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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염희진]규제 한국, 데스밸리로 내몰리는 벤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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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염희진]규제 한국, 데스밸리로 내몰리는 벤처인

염희진 산업2부 기자 입력 2019-03-04 03:00수정 2019-03-04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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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희진 산업2부 기자
지난달 22일 벤처기업협회가 주최한 ‘벤처기업 규제 및 애로 개선 간담회’에 참석한 A 대표는 자신을 ‘데스밸리에 빠진 5년 차 벤처기업인’이라고 소개했다.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뜻하는 데스밸리는 주로 스타트업 창업 3∼5년 차에 찾아오는 어려움을 뜻한다. 기술개발 후 제조를 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거나 유통 및 마케팅 단계에서 초기 자금을 써버렸을 때 벤처기업인은 이 계곡에 빠진다.

A 대표는 2014년 회사 설립 후 기술보증기금으로부터 1억 원을 지원받아 스마트 가로등 통신모듈을 개발했다. 데이터 비용이 들지 않고도 원격 제어가 가능한 가로등은 세계 최초였다. 하지만 그후 A 대표는 12억 원의 개인 자금을 쏟아붓고도 회사는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현재는 투자까지 받지 못해 주문이 들어와도 양산이 어려운 상태에 빠졌다. 지난 5년간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A 대표는 자신이 개발한 스마트 가로등을 판매하고자 2년 전 조달청의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조달청으로부터 입찰 자격이 안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직접 제품을 생산할 공장을 운영 또는 소유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현재 ‘조달사업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제조업체의 직접생산이 가능한 생산시설, 즉 공장이 있어야만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 입찰참가자격을 얻을 수 있다. 조달물자의 품질관리를 위해서라는 게 조달청이 내세우는 규제의 명분이다.

A 대표는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의 제조 벤처들은 대부분 외주 공장에 제조를 맡기는데 자가 공장이 있어야만 입찰할 수 있는 건 시대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현장을 모르는 규제”라고 지적했다. 결국 A 대표는 조달청을 통해 연간 20억 원의 매출을 기대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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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취재하면서 만난 창업 3년 차 이상의 벤처기업인들은 신(新)산업에 대한 규제의 벽을 사업을 포기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지적했다. 이전까지 없었던 첨단기술을 밑천으로 하는 벤처기업인이야말로 사회 곳곳에 뿌리박힌 낡은 규제들과 최전선에서 싸우는 전사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 구조적 문제를 A 대표처럼 개별 기업인들이 알아서 돌파하도록 내버려 두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벤처업계의 창업 환경은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유니콘 기업(기업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벤처기업)은 지난해 3개에서 올해 6개로 늘었으며 신규 벤처투자는 지난해 3조4000억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부의 창업자금 지원 정책이 빛을 보며 취업보다 창업을 선택하는 청년이 늘고 있다. 벤처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투자 환경이 조성되자 정부는 1990년대 후반 벤처 붐에 이은 ‘제2의 벤처 붐’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신규 벤처업체를 늘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벤처의 생존율을 높이는 것이다. 벤처기업인을 죽음의 계곡으로 내모는 규제가 없는지 정부가 잘 살펴야 하는 이유다.


염희진 산업2부 기자 salthj@donga.com
#벤처기업 규제 및 애로 개선 간담회#벤처업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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