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송충현]‘미국이 예뻐해주길 ’기다리는 우리 정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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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충현 경제부 기자
송충현 경제부 기자
“미국이 우리를 예뻐하면 미리 귀띔해 주겠죠. 그것 말고는 알 방법이 없어요.”

세계 자동차 업계의 눈과 귀가 이달 17일 미국 상무부의 입으로 쏠리고 있다. 미 상무부가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외국산 자동차와 부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할지, 부과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할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최종 보고서를 제출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최근 기자들과 정부 고위 관계자가 만난 자리에서 17일 이후 언제쯤이면 미국의 결정을 확인할 수 있을지 물었다. 정부 고위 관계자가 내놓은 대답은 “알 방법이 없다”였다. 다소 의외였다. 한국 자동차 업계의 명운이 걸린 일인 만큼 정부가 최소한 보고서의 윤곽이라도 파악해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90일 이내에 트럼프 대통령이 권고안에 따라 최종 조치를 취하게 되는데 그때가 돼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미 언론에 따르면 모든 나라의 외국산 자동차와 부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 자율주행차·전기차 등 특정 기술을 적용한 자동차 산업에만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 이 두 가지를 절충한 방안 등 여러 가지 방안 중 하나가 보고서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당초 보고서에 한국을 면제 국가로 지정하는 내용이 들어가길 내심 기대했던 정부는 상황이 심상치 않자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미국에 파견해 의회 관계자들을 설득하는 등 막바지 대응에 나섰다. 정부 관계자는 “논리적으로 미국이 한국에 고율 관세를 부과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는 보호 무역주의 확산으로 가뜩이나 좁아진 수출길에 ‘고율 관세’란 지뢰가 장착되진 않을까 마음을 졸이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미국이 외국산 자동차와 부품에 25% 관세를 부과할 경우 한국 자동차 산업의 무역흑자가 최대 98억 달러 감소하고 고용 감소 효과는 최대 1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자동차 업계가 걱정하는 최악의 상황은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 전까지 정부로부터 어떤 언질도 받지 못한 채 무방비 상태로 관세 폭탄을 끌어안는 것이다. 업계는 이번 정부 들어 산업 현장과 정부의 유기적인 소통과 협력이 줄었다는 불평을 내놓는다. 지난해 말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를 연장할 때도 정부가 발표 직전에야 이를 통지해 준 탓에 사업 전략을 세우는 데 애를 먹었다는 반응이 많았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이전 정부는 자동차 산업과 관련한 정책이 있으면 최소 2, 3일 전에 통보해주고 함께 전략을 구상했는데 이젠 사전 협의도 없고 일방향 통보에 그치는 느낌”이라며 “게다가 미국 무역확장법과 관련해서도 정부로부터 얻는 정보가 거의 없다”고 꼬집었다.

물론 정부라고 두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쓸 수 있는 인적·물적 자원을 총동원해 미 행정부가 한국산 자동차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상대가 어떤 패를 들지 모른 채 “한국은 죄가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하는 것도 사실이다. 한시라도 빨리 최종 보고서의 윤곽을 파악해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이며 이를 바탕으로 한국 자동차 업계가 대비하도록 도와야 한다. “미국이 우리를 예뻐하면 알려 줄 것”이라며 ‘선의’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설사 농담일지라도 정부가 내놓기엔 무책임한 반응이다.
 
송충현 경제부 기자 balgun@donga.com
#미국 보호 무역#자동차 수출 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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