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헌재]특급 유망주 안우진의 주홍글씨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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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그 사건’만 없었다면 올해 신인왕은 강백호(19·KT)가 아닐 수도 있었겠는데요.”

23일 열린 한화-넥센의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4차전을 지켜보던 한 후배 기자는 넥센 신인 투수 안우진(19)의 투구를 보면서 탄성을 내뱉었다. 193cm의 큰 키에서 내리꽂는 구속 시속 150km대의 빠른 공은 누가 봐도 일품이었다. 슬라이더는 어지간한 투수의 속구와 맞먹는 143km가 찍혔다.

에이스 투수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베테랑도 긴장하는 포스트시즌 마운드에 선 그에게선 신인답지 않은 여유가 느껴졌다. 준플레이오프에서 2승을 거두는 동안 9이닝 7안타 10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악마의 재능’이라고 할 만했다. 그런데 준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MVP)는 그의 몫이 아니었다. MVP는 기자단 투표로 정해지는데 그는 74표 가운데 24표를 받는 데 그쳤다. MVP는 49표를 얻은 팀 선배 임병욱이었다.

기자단의 평가가 인색했던 이유는 그에게 학교폭력 가해자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안우진은 휘문고 3학년이던 지난해 후배들을 집단 폭행했다. 이 사실이 드러나면서 넥센 구단은 올해 정규시즌 50경기 출장정지와 함께 스프링캠프 제외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도 국가대표 3년 자격정지 처분을 내렸다.

만약 그 일이 없었다면 안우진은 고졸 신인 최다 홈런 기록(29개)을 세운 강백호와 함께 치열한 신인왕 경쟁을 벌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뒤늦게 1군에 합류하면서 정규시즌에서 2승 4패, 평균자책점 7.16으로 부진했다.

그는 많은 것을 잃었다. 그의 기사에는 어김없이 ‘학교폭력’과 관련된 댓글이 달린다. 앞으로 국가대표에 뽑히기도 쉽지 않다. 팬들과 기자들은 냉정한 눈으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주시할 것이다. 다 자업자득이다.

그렇지만 나쁘게만 여길 일은 아니다. 일찍 예방주사를 맞았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안우진 정도면 그간 자기 마음대로 선수 생활을 해 왔을 것이다. 프로에서도 스타가 된 후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폭탄이 되었을 수도 있다. 상습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빚은 강정호를 비롯해 야구 실력과는 정반대 인성으로 신세를 망친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요즘 안우진은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넥센 관계자는 “선배들의 조언을 들으며 겸손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사인 요청에도 적극적으로 임하는 등 팬서비스에도 열심이다”고 전했다. 1군 복귀 때 “야구를 떠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던 대로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좋은 투수가 되길 바란다. 야구로 성공하되 항상 속죄하는 마음으로 좋은 일도 많이 하는 선수가 되었으면 한다. 피해자들에 대한 진정한 사과는 물론이다. 안우진은 KBO리그에 모처럼 떠오른 특급 유망주다. 주홍글씨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겠지만 이겨내는 것도 그의 몫이다. 어릴 적 실수를 딛고 누가 봐도 모범적인 선수로 사는 것. 그것이야말로 안우진이 걸어가야 할 길이 아닐까 싶다.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uni@donga.com
#준플레이오프#넥센#안우진#프로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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