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상운]공공기관 채용비리와 18세기 프랑스의 몰락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김상운 정치부 기자
김상운 정치부 기자
유럽 대륙의 강자 프랑스가 18세기 들어 영국에 압도당한 배경에는 공공재정 부패와 낭비가 한몫했다. 미국 역사학자 폴 케네디는 저서 ‘강대국의 흥망’에서 “영국에서는 정부 지출과 국가부채 증가가 산업투자에 손상을 주지 않은 반면, 프랑스는 돈을 가진 사람들이 사업 투자보다 관직을 사도록 부추겼다”고 썼다. 사들인 관직으로 공공재정을 흥청망청 낭비하고 사익을 추구하는 데 프랑스 지배층이 탐닉했다는 것이다.

결과는 프랑스의 몰락이었다. 1689∼1815년 영국과 프랑스가 벌인 7차례의 큰 전쟁에서 영국은 매번 승리했다. 영국은 효율적인 공공재정 관리를 앞세워 유럽 금융시장에서 낮은 금리로 전쟁비용을 조달해 국가부채에 허덕이던 프랑스를 눌렀다.

300년 전 프랑스 얘기를 지금 꺼내는 것은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 비리와 국가재정 낭비가 화두로 떠올라서다. 이른바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공기관이 노조와 결탁해 친인척을 무기계약직으로 채용한 뒤 정규직으로 전환한 행태는 관직을 매수해 공공재정을 유용한 18세기 프랑스의 부패상을 연상시킨다. 정년이 보장되는 공공기관 임직원들의 봉급은 대부분 혈세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권의 상황 인식은 그리 심각한 것 같지 않다. 청년실업과 맞물려 국민적 공분이 커지자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정의당과 민주평화당은 자유한국당의 국정조사 요구에 동참했다. 하지만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감사원 감사 결과를 지켜보자며 반대하다 뒤늦게 “국정조사 수용을 검토하겠다”고 물러섰다. 김태년 정책위의장은 23일 당 회의에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을 비리의 온상인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데 이는 이명박 정부 때 시작해 박근혜 정부에서도 계속 추진한 일”이라고도 했다.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발생한 비효율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민주평화당 윤영일 의원의 국감 자료에 따르면 인천공항공사는 보안, 환경미화, 교통관리 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위해 자회사 2개를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특수경비업 허가를 별도로 받아야 하는 현행법 때문에 자회사 한 개를 추가로 세워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자회사가 늘면 당연히 관리비용은 늘 수밖에 없다.

이처럼 예상 밖 비효율이 발생하자 정규직 전환 비율을 축소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민주당 박완주 의원에 따르면 농협중앙회는 4728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으나, 추진 과정에서 목표 인원이 당초 계획의 40.5%(1917명)로 줄었다.

비효율적이고 부패한 공공재정 집행에 대한 야권과 언론의 쓴소리를 여권은 ‘정치 공세’로 몰아붙일 일이 아니라 귀를 기울여야 한다. 케네디는 “18세기 영국의 우위는 공공재정에 대한 의회 통제에서 비롯됐다”고 했었다. 국회가 바로 서야 공공재정도 바로 설 수 있다.
 
김상운 정치부 기자 sukim@donga.com
#친인척 채용#채용비리#정규직 전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