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주애진]가난한 청년 심은 데 가난한 미래 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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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애진 산업2부 기자
주애진 산업2부 기자
지난달 17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는 두 개의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한쪽에선 우비를 입은 청년들이 ‘월세 버느라 집에도 못 간다’ ‘같이 살아요’ 등의 문구가 쓰인 손팻말을 들었다. 청년정당 ‘우리미래’와 청년단체 ‘민달팽이유니온’이 주최한 이날 집회는 역세권 청년임대주택 건립을 지지하기 위한 모임이었다.

반대쪽에선 ‘성내동 청년임대주택 반대 위원회’가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강동구 성내동 서울상운차량공업 부지에 들어설 최고 35층 규모의 청년주택 건립을 반대하기 위해 모였다. 이들은 “저층 빌라지대에 고층 임대주택이 들어서면 일조권이 침해받는 등 재산권 침해가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역세권 청년주택을 두고 곳곳에서 파열음이 일고 있다. 이 사업은 지하철역 근처에 20, 30대 청년들을 위한 소형 임대주택을 지어 인근 시세보다 저렴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근 주민들이 주변 집값과 임대료를 떨어뜨릴 수 있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온 건 4월 영등포구 당산동의 청년임대주택 예정 지역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붙인 안내문이 알려지면서다. ‘5평짜리 빈민 아파트가 들어오면 아파트 가격 폭락 등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된다’는 안내문에는 청년주택을 ‘혐오시설’로 보는 인식이 담겨 있다. 청년주택을 반대하는 일부 주민은 우범지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했다.

청년주택을 둘러싼 갈등을 지켜보면서 청년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이토록 서늘해졌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이런 시선이 주거문제에만 해당될까. 청년들은 점점 줄어드는 일자리를 두고도 아버지세대 혹은 할아버지세대와 경쟁을 벌여야 할 판이다.

이 모든 경쟁은 청년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 기성세대는 이미 경험과 자산을 축적한 상태에서 전장에 나서 있기 때문이다. 인구학자인 조영태 서울대 교수는 저서 ‘정해진 미래’에서 향후 기성세대 간 다툼에 청년들만 등이 터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베이비부머 2세대(1965∼1974년생)에게 밀려난 베이비부머 1세대(1955∼1964년생)가 정치적, 사회적 힘이 부족한 청년층의 일자리를 파고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우려는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문제는 청년들의 기회를 빼앗은 미래사회가 건강하게 작동할 수 있을지다. 청년을 위한 정책은 일방적으로 한 세대를 돕는 차원이라기보다는 사회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봐야 한다. 조금 많이 가진 기성세대가 재산권을 ‘일부’ 침해받더라도 대승적 관점에서 양보하는 게 맞는 건 아닌지. ‘가난한 청년 심은 데 가난한 미래 난다.’ 청년주택 찬성 집회의 한 참가자가 들고 있던 손팻말에 쓰여 있던 글귀를 쉽게 흘려보낼 수 없는 이유다.
 
주애진 산업2부 기자 jaj@donga.com
#역세권 청년임대주택#우리미래#민달팽이유니온#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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