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헌재]당신의 자전거도로는 안녕하신가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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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출근이 기다려지는 날이 있다. 자전거를 타고 회사로 오는 날이다. 매일은 아니지만 2011년부터 간간이 ‘자출(자전거 출근)’을 해왔으니 반(半)자출족은 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집이 있는 서울 잠실에서 회사가 위치한 서울 광화문까지는 자전거로 1시간가량 걸린다. 평일 출퇴근 시간 기준으로 차량을 이용하는 것과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자전거 위에서의 1시간은 상당히 다채롭다. 한강 자전거도로와 중랑천, 청계천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주로 이용하는데 볼거리, 먹을거리 천지다.

올봄 꽃구경은 자전거 위에서 거의 다 했다. 3월 말 개나리를 시작으로 4월 초 벚꽃, 최근에는 철쭉이 한창이다. 고맙게도 요즘엔 튤립도 잔뜩 심어 놨다. 광장시장, 뚝도시장, 새마을시장 등 전통시장을 들르는 재미도 쏠쏠하다.

자출족의 한 사람으로 이달 초 서울시가 개통한 종로 자전거도로에 기대가 컸다. 2020년까지 여의도∼광화문∼동대문∼강남을 잇는 자전거도로망을 만든다는 구상도 실현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종로 자전거도로에 오른 지 몇 분 되지 않아 기대는 산산조각 났다. ‘큰돈 들여 이렇게밖에 못하나’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서울 광화문우체국 앞에서 종로6가 동대문종합상가까지 2.6km 구간에 설치된 종로 자전거차로는 사고 나기 딱 좋다. 자전거도로가 바깥 차선 끝 쪽에 만들어져 있어 버스 등 차량과 엉킬 수밖에 없다. 상가와도 인접해 짐을 부리는 사람과 차량이 도로 곳곳을 점유하고 있다. 폭도 1.5m밖에 되지 않아 자전거 한 대가 겨우 지나간다. 자전거 운전자, 차량 운전자, 주변 상인 등 모두가 불만이다.

왜 굳이 종로에 만들었는지도 의문이다. 청계천 도로를 따라 청계7가 사거리부터 청계천 끝까지 몇 해 전부터 이미 자전거도로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만들 생각이었다면 기존 청계천 자전거도로를 연장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차선 1개 정도로 폭까지 넓혔다면 더욱 그럴싸한 자전거도로가 되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서울을 ‘자전거 도시’로 만든다는 구상은 10년 전에도 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책상머리 정책이다. 당시 자전거도로 책임자는 “자전거는 건강에 좋고, 교통난과 주차난을 덜어주고, 공기에 좋고, 에너지 절약까지 할 수 있다”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그렇게 좋은데 왜 자전거 출퇴근을 안 하나”라는 질문에 그는 뜻밖의 답을 내놨다. “좋긴 한데 자전거는 너무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종로 자전거도로에서 차량을 피해 곡예운전을 하며 10년 전 그분 생각이 났다. 이번에는 제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uni@donga.com
#자전거출근#종로 자전거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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