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서동일]혁신 눈높이 올라가는 소비자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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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일 산업1부 기자
서동일 산업1부 기자
기업들이 모바일 신제품을 소개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쓰는 단어가 있다. ‘혁신(Innovation)’이다. 수년 동안 한국 소비자들은 삼성전자, LG전자, 애플 신제품을 만났는데 그때마다 이들은 “혁신을 이뤘다”고 강조해 왔다.

이렇다 보니 최근 들어 시장이 반응하는 혁신에 대한 ‘역치’가 눈에 띄게 높아졌음을 체감할 수 있다. 전자 업계를 담당하니 모바일 신제품 공개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가하게 되는데 “직접 보니 어땠어?”처럼 호기심 어린 질문을 받는 횟수가 점점 주는 것이 느껴진다. 반대로 “크게 바뀐 게 있겠어?”라는 반응은 늘었다.

사실 더 이상 모바일은 혁신이라 부를 만한, 혁신을 할 만한 부분이 점점 줄어드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테면 전략 스마트폰을 가르는 ‘대화면’이라는 기준점도 대부분 스마트폰의 디스플레이가 커지면서 모호해졌다. 삼성전자 노트 시리즈는 펜이라도 차별화되었지만 다른 스마트폰들은 소비자들이 겉모습으로는 모델을 구별하지 못할 정도가 됐다. 모바일 기업들이 ‘완성형’이란 표현을 쓰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이쯤 되니 시장에서는 여러 말이 나온다. 수년 동안 반복된 혁신이 주는 피로감에 지쳤고, 이제 혁신은 충분하다는 반응이 있다. 기업들이 여전히 때가 되면 신제품 시리즈를 출시하고는 있지만 이제 사양의 발전 속도는 훨씬 더뎌진 것 같다고도 한다. 반면 여전히 소비자들은 모바일에 대한 기대감이 높고, 혁신을 원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기업들이 매년 혁신이란 용어를 남발하는 것이 문제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러는 사이 짧게는 1년, 길어도 1년 반에 불과했던 모바일 교체 주기는 계속 길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쓰던 모바일을 반납하면 보상해주고, 마케팅을 강화해 교체 주기를 단축시키는 전략을 택했고, LG전자는 한 번 사면 오래 쓸 수 있도록 기능을 수시로 업그레이드해 주는 방식을 택했다. 어떤 전략이 효율적일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소비자의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카메라 성능을 디지털카메라 못지않게 만들어도, 모바일 전면의 90%를 디스플레이로 채워도 시장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중국 ZTE는 얼마 전 화면 두 개에 경첩을 단 것이 전부인데 세계 최초 폴더블 스마트폰이라고 공개해 글로벌 미디어들의 웃음을 샀다. 폴더블은 운영체제(OS)나 사용자 경험 면에서 수십 가지 허들(장애물)이 앞에 쌓여 있어 기업들이 소비자 마음까지 달려오기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ZTE도 이를 알았겠지만 이들 역시 높아진 역치에 억지로 혁신에 도전하려다 나온 헛발질이 아니었을까. 기업들이 점점 더 소비자의 마음을 얻기 어려워지고 있다.
 
서동일 산업1부 기자 dong@donga.com
#모바일#혁신#삼성전자 노트 시리즈#전략 스마트폰#z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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