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신광영]‘뻗치기’는 취재원을 차별하지 않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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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 사회부 기자
신광영 사회부 기자
화제의 취재원은 그냥 만나주지 않는다. 본보 기자가 지난해 11월 이국종 교수가 있는 아주대병원 외상센터를 며칠째 맴돌던 때다. 당시 이 교수는 총상을 입은 북한 귀순 병사를 치료하고 있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이 교수와 마주친 곳은 그의 연구실 앞 화장실이었다. 이 교수는 화장실에 잠입해 기다린 기자에게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깔려 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들키지 않고 나갈 수 있는 ‘퇴로’를 귀띔해줬다.

며칠 뒤 본보에 “귀순병 수술 다음 날…그는 식당서도 수술 모자를 벗지 않았다”는 기사가 실렸다. 결국 열흘간의 ‘뻗치기’(취재원 주변에서 무작정 기다리는 취재방법)에도 이 교수 인터뷰는 성사되지 못했다. 그 대신 청소아줌마와 구내식당 영양사, 병원 세탁실 직원, 동료 의료진 눈에 비친 이 교수의 모습을 기사로 옮겼다.

여당의 대권주자에서 성범죄 피의자로 전락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공인이 공적인 상황에 놓였으니 그 역시 ‘뻗치기’ 대상이다. 10일 안 전 지사가 은신하는 수도권 한 야산의 컨테이너 숙소를 가까스로 찾아냈다. 몇 걸음 다가서자 숙소 근처에서 누군가가 기자를 향해 활을 겨누는 모습이 보였다. 안 전 지사에게 거처를 제공한 지인이었다. 할 수 없이 ‘비무장지대’를 정하고 멀찍이 떨어진 자리를 잡았다.

본보가 20일 보도한 “안희정 ‘내가 이렇게까지…’ 친구에 토로, 부인-아들과 열흘 칩거” 기사에도 안 전 지사의 말을 많이 담지 못했다. 열흘간 그의 행보를 살피고 주변 인물을 만나 기록한 메모를 종합했다.

기사에 대한 독자의 반응은 매서웠다. “성폭력 가해자를 두둔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많았다. 한 여성단체 주관 토론회에서는 본보 기사를 두고 “가치판단을 제대로 하지 않은 보도”라고 비판했다. 새겨들을 지적이다. 발품 팔았다고 좋은 기사가 나오는 건 아니다. 다만 4개월 전 이 교수 관찰기를 보도했을 땐 “국민 영웅의 진면목을 보여줬다”는 호평이 지배적이었다. 같은 형식의 기사였지만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

이 교수는 존경을, 안 전 지사는 비난을 받는 인물이다. 하지만 기자의 눈으로 보면 두 사람 모두 뉴스 가치가 높은 관찰 대상이다. 두 사람을 최대한 정확히 관찰할 수 있게 가까운 교두보를 확보하는 게 우선이다. 섣부른 가치판단보다 눈앞의 상황을 선입견 없이 지켜보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국민적 영웅에게서 진솔한 면모가, 여론의 몰매를 맞는 인물에게서 교묘한 꼼수가 포착되길 기다리곤 한다. 하지만 그런 기다림은 곧잘 배반당한다. 이것이 ‘뻗치기’의 묘미다. 미리 정답을 정해놓고 현장에 가면 어김없이 무너진다. ‘뻗치기’는 중립적이다. 그래서 “안 전 지사에 대해 왜 가치판단을 하지 않느냐”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뻗치기 현장에 가는 후배에게 잔소리를 던진다.

“보고 들은 대로만 쓰자.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고.”
 
신광영 사회부 기자 neo@donga.com


#취재원#관찰#선입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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