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송충현]통닭과 족발에게 물어야 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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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충현 산업2부 기자
송충현 산업2부 기자
“프랜차이즈 업체에 원가를 공개하라는 건데 한국에서 대체 어떤 사업자가 영업비밀을 공개합니까?”

최근 기자와 만난 프랜차이즈 업계 관계자가 답답하다는 얼굴로 불만을 털어놓았다. “마진(이윤)을 얼마 붙여 장사하고 있는지 공개하라는 건데 시장경제 체제에 이런 법이 있나요?” 그는 한동안 격정적인 말투로 푸념을 이어갔다.

그의 불만은 공정거래위원회를 향해 있었다. 공정위는 가맹본부가 필수품목의 공급가격을 예비창업주에게 공개하는 내용을 포함한 가맹거래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 중이다. 필수품목은 가맹점주가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기 위해 가맹본부로부터 반드시 사야 하는 물품으로 생닭, 치즈 등이 대표적이다.

공정위의 논리는 이렇다. 프랜차이즈의 주 수익원이 필수품목 유통마진이다 보니 시장가보다 비싸게 강매하거나 세제처럼 불필요한 물건까지 필수품목에 포함한다는 것이다. 공급가를 공개하면 예비창업주는 창업에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가맹점주는 본사와의 정보 비대칭성을 줄일 것으로 공정위는 기대하고 있다.

프랜차이즈 업계는 강력히 반발했다. 업계 관계자는 “10명이 가맹 상담을 하면 실제 계약까지 이뤄지는 경우는 한두 명”이라며 “왜 불특정 다수에게 영업 정보를 노출하라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업계의 반발이 가라앉지 않자 공정위는 7일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와 만나 필수품목을 개별 상품이 아닌 상품군별로 공개하는 내용을 협의했다. 공정위는 이날 협의 결과를 시행령에 반영할지 검토할 방침이다.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전례 없이 공정위에 반기를 든 배경에는 자신들을 ‘나쁜 장사꾼’으로 여기는 데 대한 불만이 크다. 어떻게든 가맹점주로부터 한 푼이라도 더 뜯어 본사의 배만 불리려 하는 사업체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시장가격이라는 게 뻔하기 때문에 가맹본사가 필수품목으로 폭리를 취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가격을 공개하라는 건 프랜차이즈 업계를 얕잡아 보는 것이죠. 하나의 사업체로 인정한다면 이런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진 않았을 거예요.”

가맹점주와 일반 소비자들의 반응은 공정위의 편이다. 오너 가족회사를 필수품목 유통 단계에 포함하거나 시장에서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물건까지 강매해 소비자가격을 끌어올리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프랜차이즈 관련 기사에 ‘본사가 비밀주의로 이익을 올리는 사이 세입자와 알바는 최저임금 몇 푼 때문에 서로 싸운다’는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공정위가 이처럼 시장에 일일이 간섭하는 게 옳은가는 따로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필수품목 유통 단계에 오너 가족회사가 관여돼 있다면 기존 법률로도 충분히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의 시장 개입은 기업 이미지 훼손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이뤄지는 게 적절해 보인다.

다만 프랜차이즈 업계도 무작정 “원가 공개는 안 된다”고 버틸 게 아니라 가맹점주와 어떻게 상생해 나갈지를 먼저 고민하는 게 옳아 보인다. 필수품목 공급가를 ‘원가’로 부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프랜차이즈 업계는 가맹점주를 파트너가 아닌 1차 소비자로 보고 있다.

한 프랜차이즈 업체 고위 관계자의 뼈 있는 한마디를 소개할까 한다.

“한국 프랜차이즈 사업자는 대부분 자수성가하다 보니 ‘내가 가맹점주를 먹여 살린다’는 시각을 가진 분들이 많아요. 가맹점이 성장하면 프랜차이즈 본사 매출은 자연스럽게 올라가게 돼 있습니다. 큰 그림으로 보면 굳이 필수품목 마진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거죠.”

송충현 산업2부 기자 balgun@donga.com
#프랜차이즈#원가#사업#가맹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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