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건혁]‘아웃리치’만으로 미국 통상압박 뚫을 수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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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혁 경제부 기자
이건혁 경제부 기자
지난달 설 연휴 기간 미국 상무부의 철강 및 알루미늄 수입 규제안이 터져 나왔다. 안보 위협을 이유로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을 예고하며 한국산 제품에 최대 53% 관세를 물릴 수도 있다는 초강력 조치가 예고되자 곳곳에서 우려가 쏟아졌다.

전문가들과 시장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건 상무부의 세 가지 권고안 중 한국과 브라질 등 12개 국가에 선별 과세하는 방안이었다. 대(對)미국 철강 수출 1위 캐나다는 물론 일본(7위), 대만(9위) 등 철강 수출 상위권에 있는 국가들 중 상당수가 리스트에서 제외됐다. 반면 한국(3위)은 중국산 철강 최대 수입국이라는 이유 때문에 12개국 리스트에 포함됐다.

다급해진 정부는 ‘아웃리치(Outreach)’를 통해 이번 사태에 대응하겠다고 밝혀 왔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달 21일 국회에서 “투자기업, 주지사, (한국 철강) 수요기업들을 대상으로 아웃리치를 강화하겠다”고 말한 뒤 최근 미국으로 출국했다.

아웃리치는 공식적인 활동 외에 현지 관계자 및 주민들과 광범위하게 접촉해 한국의 논리를 설득하는 것을 뜻한다. 전문가들은 비밀스럽고 불투명한 로비 활동보다 접촉 대상과 범위가 넓고 근본적인 인식 개선이 필요할 때 아웃리치가 효과적이라고 설명한다. 미국에서는 이스라엘이 아웃리치를 잘 활용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꾸준히 아웃리치 활동을 해왔다고 설명한다. 미 백악관과 상무부는 물론 의회, 경제계 인사들과 접촉해 미국의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했다. 우리 정부는 무엇보다 중국에서 수입하는 철강의 2.4%만이 미국 수출용 철강제품에 사용된다는 점을 미국 측에 설명해 왔다. 하지만 1년 남짓한 한국의 아웃리치 활동 결과는 철강 관세 예고, 세탁기 세이프가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등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정부가 ‘지금은 전시’라고 표현할 만큼 지금 같은 급박한 시기에 아웃리치만으로 미국의 통상 압박을 극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당장 미국의 수입규제로 큰 타격이 불가피한 철강업계에서는 “정부의 아웃리치에 큰 기대는 안 하고 있다”는 이야기마저 나온다.

물론 아웃리치는 필요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앞으로 3년, 재선에 성공하면 최대 7년이 남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을 바꿔놓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철강 수입규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치밀하고 강력한 대응이 병행 되어야 한다고 본다.

김 본부장의 아웃리치 활동에 모든 걸 맡겨놓아서는 안 된다. 청와대나 정부부처가 나서 고위급 접촉을 늘려야 하며 국회의원들도 기회가 닿을 때마다 미 의회 의원들을 만나 설득해야 한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은 물론 교민사회까지 나설 수 있도록 정부가 전방위로 지원해야 효과를 볼 것”이라고 했다. 필요하면 로비도 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까지 겨우 한 달여가 남았다. 철강 이후에는 자동차, 반도체, 지식재산권 등 어떤 분야로 확산될지도 알 수 없다. 미국의 통상압박에 보다 결연한 심정으로 대처해야 한다.

이건혁 경제부 기자 gun@donga.com
#미국 철강 수입 규제#아웃리치#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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