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이 만난 사람/박제균]유승민 “준비 안 된 대통령 가장 위험…나라 바꾸고 싶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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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보수신당 의원 유승민

유승민 의원은 정국의 키 플레이어다. 조기 대선 국면에서의 정치적 추 역할을 할 개혁보수신당의 핵(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낮은 대선주자 지지율에 대해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유승민 의원은 정국의 키 플레이어다. 조기 대선 국면에서의 정치적 추 역할을 할 개혁보수신당의 핵(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낮은 대선주자 지지율에 대해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 유승민(59). 참으로 논쟁적인 남자다. 2005년에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친박(친박근혜)’ 핵심이었다. 2007년엔 사실상 대선이었던 박근혜-이명박의 당내 경선 때 박 캠프에서 정책메시지 총괄단장을 맡은 핵심 참모였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유일한 남자는 박근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여권이 박 대통령에게 휘둘릴 때 유일하게 고개를 쳐들고 공개적으로 반기(反旗)를 든 것도 유승민이다. 그는 박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의 아이콘으로 찍혔지만, 역설적으로 그 덕에 정치적으로 성장했다. 올 조기 대선 국면에서 정치적 진폭을 키울 진자 역할을 할 개혁보수신당의 핵심도 유승민이다. 김무성 전 대표가 신당 창당의 깃발을 들었지만, 유승민이 참여하지 않았다면 원내교섭단체 구성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박 대통령에 대한 배신 이미지 때문에 아직도 보수 일각에선 그에 대한 ‘사상적 우려’를 거두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이야말로 ‘진짜 보수’라고 당당히 밝히는 유승민을 지난해 12월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
 
 ―부친(고·故 유수호 13·14대 의원) 얘기부터 해보자. 부친의 정치 참여가 정치에 발을 들여놓는 계기가 됐나.

박제균 논설위원
박제균 논설위원
 “지난해 돌아가신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던 해 고등고시에 합격했다. 판사였는데, 내가 고등학교 진학 무렵 법관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김정길 전 의원이 부산대 총학생회장 시절 권력기관에서 구속하라는 걸 구속적부심에서 풀어주기도 해 박정희 정권에 미운털이 박혔다. 노태우 대통령과 경북고 동기인 인연으로 13대 민정당 국회의원이 됐으나 정치가 별로 체질에 안 맞아 하셨다. 사실 나도 아버지 성질을 많이 닮아서 정치는 별로 체질에 안 맞는다.”(웃음)

 ―정치에 안 맞는데, 4선 의원을 하고 있나.


 “아버지보다는 맞는 셈이다. 정치 할 생각은 별로 없었는데, 1997년에 외환위기 터지고 98년에 김대중(DJ) 정권 들어서고 국책연구소(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경제정책 연구하는 학자로서 정부, 청와대와 갈등도 많이 빚었다. 2000년 초에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여의도연구소장 자리를 제안해서 직장 그만두고 왔다. 아버지께서 절대 비굴하지 말라고, 늘 의협심을 가지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그것에 영향을 받았다.”

 유승민의 좌우명은 ‘초지일관(初志一貫), 불요불굴(不撓不屈)’이다.

 ―존경하는 인물이 에드먼드 버크(1729∼1797·영국의 보수정치 이론가)와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라는데 ‘따뜻한 보수’를 주장하는 사람으로선 다소 의외다.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혁명이라는 게 올바른 관습이나 전통, 질서까지도 다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면서 영국이 어떻게 프랑스 대혁명 같은 것을 피하면서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런 것이 보수의 정신이다. 대처는 정책을 지지하기보다는 지도자로서의 강단이라고 할까, 의지를 존경한다.”

보수는 헌법 가치 지키는 것

 ―‘따뜻한 보수’가 유승민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돼 있는데,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가졌나.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양극화라는 화두를 꺼냈다. 그때는 양극화라는 말로 부자와 가난한 사람, 빈부격차로 사회를 또 편 가르기 해서 2007년 대선에 이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했다. 그해 한나라당 경선을 치르고 2011년까지 경제학자이자 현실 정치인으로 지역구에서 많은 사람들과 직접 만나게 됐다. 그러면서 양극화 문제가 대한민국 공동체를 완전히 붕괴시키고 박살낼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걱정을 하게 됐다.”

 ―그래서 2011년 최고위원 출마하면서 전당대회에서 ‘따뜻한 보수’를 내세운 건가.

 “‘정의로운 보수, 따뜻한 보수를 위해 용감한 개혁을 하자’고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양극화 불평등을 그대로 놔두면 기득권을 누리는 부자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무책임한 좌파 포퓰리스트들에게 정권이 넘어가면 남미 국가들처럼 추락할 것이다. 이런 주장을 2011년 최고위원 출마선언문부터 한 것이다. 2015년 4월 8일 교섭단체 대표연설 내용은 최고위원 출마선언문과 맥이 같다.”

 ―‘내가 말하는 보수는 이런 것이다’를 요약하면….

 “보수는 지키는 것이다. 첫째, 대한민국 헌법 가치를 지키는 것이다. 둘째,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 사회 분열로 공동체가 깨지지 않게 지키는 것이다. 셋째는 안보를 지키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안에는 성장, 자유도 있지만 공화, 공동체, 법치, 평등도 있다. 헌법 안에 보수가 보고 싶어 했던 시장 자유 성장만 쏙쏙 뽑아내서 보는 것은 외눈박이 보수다.”

이·박 정부, 국방력 제고 소홀

 ―안보에서만은 아주 강한 보수의 면모를 보이는 이유는….

 “나는 태생적으로 보수다. 2008∼2016년 8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으로 간사를 하고 위원장을 했다. 안보에서는 역대 통틀어서 김용갑 전 의원만큼이나 내가 오른쪽일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서 자주국방력 높이는 데 상당히 소홀히 했다. 노무현 정부보다 오히려 소홀히 했다.”

 ―이번 대선에 출마할 건가. 왜 대통령이 되려는 건가.


 “출마 선언을 언제 할지 최종적으로 고민하는 단계다. 선언하면 끝까지 도전해 볼 생각을 가지고 있다. 대선을 세 번 겪어보니 준비 안 된 대통령만큼 위험한 게 없다. 정치 하는 사람은 최종적인 의사 결정에 참여해서 그것을 통해 나라를 바꿔보고 싶어서 하는 거다. 나도 나라를 바꿔보고 싶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어떻게 평가하나.


 “그분이 개혁보수신당 와서 경선 치르는 데 참여한다면 대환영하는 입장이다. 그분 개인에 대해서는 경쟁 상대로서, 국민으로서도 의문이 있다.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문제가 외교 안보 문제도 있지만 외환위기에 맞먹는 경제위기도 심각하다. 수십 년 동안 구조적으로 키워온 양극화, 불평등, 불공정, 이런 문제들에 대해 그분이 고민했을까. 해법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별로 없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지지율이 고공행진 중이다. 보수 재집권의 복안은….


 “조기 대선이 있더라도 다섯 달 정도 남았다. 중도에 있는 분들이 이번 사태와 지난 10년의 실정(失政)으로 진보화됐다. 그런 구도에서 선거 치러야 하니까 보수에서 마음 떠난 분들의 마음을 잡아오는 게 관건이다. 문재인이나 민주당 세력이 정권을 맡을 때 어떻게 된다는 걸 국민들도 대강 짐작을 할 테니까.”

 ―박근혜 대통령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먼저 어떤 사람인가.


 “나와는 2007년 대선 경선 이후 거리가 많이 멀어졌다. 그때는 전문성, 즉 정책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이나 고민은 부족하지만 옆에서 좋은 사람들이 도와주면 기본기는 상당히 돼 있는 분 아니냐는 믿음을 가졌었다. 2007년 경선 과정, 그 이후에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고민해서 건의하고 제안하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자꾸 멀어졌는데 그 내부가 이럴 줄은 몰랐다.”

 ―당시에는 최순실의 그림자를 못 느꼈나.

 “최순실이 최태민의 딸이고 정윤회 씨의 부인이라는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 알 만한 사람들은 알았다. 정윤회 씨가 2004년 3월 박 대통령이 당 대표 됐을 때 공식 라인에서 물러났다. 2005년 내가 비서실장 할 때도 정윤회 씨가 강남에 사무실 차려놓고 문고리 3인방과 저녁만 되면, 주말이면 회의 한다는 루머는 있었다. 최순실 얘기는 대통령이 취임한 뒤에야 슬금슬금 나왔다.”

 ―결국 박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 아이콘으로 찍힌 것은 공무원연금법과 국회법 개정안을 거래했다는 것 아닌가. 그 결정에 대해서는 지금도 후회 없나.

 “후회 전혀 없다. 공무원연금법은 스스로 생각해도 100점 만점에 50점 정도는 되는 개혁안이다. 요새는 그게 대통령 업적으로 둔갑되더라. 공무원연금 개혁은 50점이라도 했어야 했다. 그래야 국민 세금 줄일 수 있다. 국회법 개정안이 위헌이라고 대통령도 그랬는데, 내가 만난 헌법학자들은 국회가 정한 법률을 위배하는 시행령에 대해 수정을 요구하는 것은 위헌이 아니라고 했다.”

 ―정치는 세력이고, 대선 경선 출마도 해야 하는데 아직도 유승민은 독불장군이다, 따르는 사람이 없다는 평가가 있다.


 “내가 17대부터 20대까지 의원을 했는데 17, 18대는 초·재선이라 세력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19대 들어와서 국방위원장 하고 원내대표 하면서 친하고 뜻을 같이할 수 있는 동지들이 생겼다. 그런데 그분들이 다 ‘공천학살’당했다. 김무성 전 대표와 가까운 사람들 많이 살아남고, 박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들은 다 살아남았다. 개혁보수신당 와서 저하고 뜻을 같이하는 의원들 10명 정도 있다. 다 새로 사귄 사람들이다.”

박 대통령에 가슴 아픈 회한

 ―그만큼 박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으면 대선 주자로서 유승민의 지지율이 뜰 법도 한데, 아직도 미미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보는가.

 “이제까지 정치하면서 승패를 미리 계산해서 도전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국방위원장을 할 때도, 원내대표 할 때도 그렇게 해서 됐다. 이번에 대선에 도전한다면 승패보다는 내가 이 상황에서 할 역할이 뭔지를 보고, 역할이 있다면 도전할 거다. 도전하면 뒤도 안 보고 몰두하는 스타일이라서 지금 지지율은 신경 별로 안 쓴다.”

 박 대통령과의 애증을 떼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그에게 끝으로 “나중에라도 박 대통령을 만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유 의원은 “2015년 7월 원내대표에서 물러나기 직전에 대통령을 직접 만나고 싶었다. 민심도 전하고 당청 관계에 대해 느낀 점도 솔직히 말씀드리고 싶었다. 나에 대한 오해도 풀고 싶었으나 전달이 잘 안 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개인적으로 그분에 대한 인간적인 도리랄까, 가슴 아픈 회한이 있다. 지금도 참 아쉽다.”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최태민#최순실#유승민#박근혜#개혁보수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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