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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칼럼]새정연은 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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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칼럼]새정연은 달라지지 않는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입력 2015-06-03 03:00수정 2015-06-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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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이익은 안중에 없고 이익단체와 이념 집단만 대변
무소불위 권력 행사하는 ‘국회의원 세상’ 위해선 여당과 한통속 되어 맞장구
인적 구성 바뀌지 않으면 정치 후진국 면치 못할 것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지난 주말 아펜젤러와 언더우드의 내한 130주년을 기념하는 심포지엄에 들렀다가 오랜만에 ‘은둔의 나라 한국’이라는 말을 듣고 감회가 새로웠다. 미국에서 조선 선교를 위해 파견된 이들은 1885년 부활절에 같은 여객선을 타고 인천에 도착한다. 심포지엄은 두 사람이 낯선 땅에 교회를 세우고 배재학당과 연세대를 만든 업적을 기리는 행사였다. 발표자들이 소개한 당시 미국 기록에는 ‘은둔의 나라(the Hermit nation)’라는 표현이 여러 번 나온다. 세계와 단절된 채 살아가는 국가라는 의미일 것이다. 130년 전 서방세계가 한국에 대해 가졌던 인상은 실제 현실과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한국에 오기 3년 전인 1882년 지석영이라는 선비가 고종에게 상소문을 올린다. “우리나라는 바다 한쪽에 치우쳐 있어 이제까지 외교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기에 견문이 넓지 못하고 시국에 어둡습니다. 조금이라도 외무(外務)에 마음을 쓰는 자를 보기만 하면 대뜸 사교(邪敎)에 물들었다고 비방하고 침을 뱉으며 욕합니다.” 서양 열강들이 호시탐탐 조선을 노리던 시점에 내부에서는 고립 상태에 위기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되레 궁지에 몰려 있었다는 증언이다.

오늘날 한국은 ‘은둔의 나라’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과거의 단골 수식어가 전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놀랍게 변신했다. 아펜젤러 등 외부의 자극과 강압으로 근대화를 시작한 이후 ‘극단의 시대’였던 20세기를 힘들게 극복한 것은 자랑할 만하다. 그러나 사회 여러 분야 중에서 정치 분야, 특히 정치인들의 후진성과 낙후성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은둔의 나라’에 여전히 머무는 듯하다.

최근 공무원연금법과 국회법 개정에서 국회의원들이 보이고 있는 행태에는 국민 전체를 생각하는 공동체 정신이 실종되어 있다. 야당은 자신들 편이라고 믿는 공무원노조 등 이익단체와 이념 집단만을 철저히 대변할 뿐이다. 여당은 눈앞의 결론만 중요하지, 나중에 나라가 어찌 될지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태도다. 반면에 국회의원들의 권력과 특혜를 확장하는 일에는 똘똘 뭉쳐 여야가 따로 없는 모습을 보인다. 국회가 정부의 시행령을 마음대로 고칠 수 있게 한 국회법 개정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권력이 그만큼 커지는 것이라고 흐뭇해하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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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괴이하기 짝이 없는 한국의 정치인상(像)은 광복 이후 권위주의 시절을 거치면서 ‘투사형 정치인’이 뿌리내린 탓도 있지만 조선시대 사상사를 되짚어 보면 역사적 배경도 무시할 수 없다. 조선의 정치사는 주자학 이념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를 놓고 400년 동안 죽기 살기로 대립해온 역사였다. 17세기 학자인 장유는 ‘중국에는 학자가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없다’면서 ‘그저 주자학이 세상에서 존귀하게 대접받는다는 것만 듣고, 입으로 주자학을 일컫고 겉시늉으로 주자학을 높이기만 할 따름’이라고 비판했다. 국가보다는 자기 진영을 위해 일하고 시대정신은 외면하는 일부 386 정치인들의 모습과 그대로 겹쳐진다.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각종 기념사업이 시작되고 있다. 축하 분위기에 앞서 나라가 망했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사회 각 분야를 살펴보는 반성의 자세가 선행되어야 한다. 도산 안창호는 말만 요란했던 조선시대의 ‘공담(空談) 공론(空論)’을 나무랐고, 단재 신채호는 이념에 매몰된 ‘주의(主義)에 빠진 조선’을 지적한 바 있다. 김구는 한국이 ‘문화 국가’가 되기를 꿈꿨다.

새 시대에는 새로운 정치인이 필요하다. 이념에 갇힌 정치인들이 설 자리는 없다. 정상적인 교육과 교양, 도덕심을 갖춘 정치인이어야 한다. 막말 등 수준 이하의 품격에 국민들은 진저리를 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지리멸렬 역시 당의 문제가 아닌 사람의 문제다. 현재의 인적 구성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계속 같은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역사학자들은 우리나라가 300년을 주기로 중흥기를 맞았다고 분석한다. 15세기 세종 때 전성기가 있었고 300년 뒤인 18세기 영조와 정조 때에도 뛰어난 역사를 발휘했다는 것이다. 이 ‘300년 주기설’이 맞는다면 다음 차례는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가 된다. 한국에 다시 중흥기가 찾아오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현 정치를 바꾸지 않는 한 희망사항에 그칠 것 같아 답답하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새정연#은둔의 나라#공동체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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