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홍찬식 칼럼]대통령 지지율을 중계방송하는 나라
더보기

[홍찬식 칼럼]대통령 지지율을 중계방송하는 나라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입력 2015-02-25 03:00수정 2015-02-25 03:54
뉴스듣기프린트
트랜드뉴스 보기
정치인들 여론조사 중독 상태에 부정확한 수치 연일 공개는
국가와 민주주의 운영에 부정적…
가뜩이나 꽉 막힌 의사 결정 지체 현상 더 심해지고
포퓰리즘으로 흐를 우려도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을 움직이게 만든 것은 낮은 지지율이었다. 인사와 불통 이미지에 대한 비판에도 요지부동이던 박 대통령은 1월 12일 신년 회견 직후 지지율이 20%대까지 떨어지자 확 달라졌다. 신년 회견에서 “결백이 밝혀진 이상 교체할 이유가 없다”고 감쌌던 ‘문고리 권력 3인방’은 10여 일 만에 청와대 내에서 역할이 축소되거나 변경됐다. “정말 사심 없는 분”이라고 칭찬하며 교체를 부인했던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을 ‘자진 사퇴’ 형식으로 떠나보낸 것도 지지율 침체 시기와 맞물려 있다.

차기 대선주자에 대한 지지율 역시 당사자들의 민감한 반응을 끌어내고 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2·8전당대회의 유세 과정에서 “차기 대선 지지도 1위는 바로 나 문재인”이라며 스스로를 치켜세웠다.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지율이 하락하던 시점인 지난해 말 서울시 대변인을 6개월 만에 경질했다. 자신의 지지율 부진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역시 차기 대선주자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행보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는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찾아가 화합과 소통을 강조하며 “서민 대통령으로 존경한다. 참 멋있는 인생이셨다”고 밝혔다.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까지가 정치적 수사인지 가늠할 수 없다.

우리는 대통령 지지율이 매일 조사되고 공개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인 리얼미터가 2009년부터, 한국갤럽은 2012년부터 집계 중이다. 차기 대선주자에 대해서도 매일 또는 한 달 단위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집계 결과는 그날그날 정당 등에 전달된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여론에 겸허해야 한다. 지지율 조사는 차가워진 민심을 알려 주는 지표이자 견제 장치로서 유용하게 작동할 수 있다.

주요기사

하지만 여론조사가 과연 정확한 것인지는 회의가 들 때가 많다. 박 대통령 지지도만 해도 같은 시기에 최대 25%포인트까지 차이가 난 적이 있다. 2013년 8월 한 조사기관은 70.6%로, 다른 조사기관은 45.8%로 집계했다.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기도 한다. 혹시라도 조사기관이 정치적으로 누구 편을 든다면 최악의 시나리오가 된다. 이런 여론조사 결과를 마치 스포츠 중계방송하듯 전달할 때 국가와 민주주의 운영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정치인들은 여론조사에 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이완구 국무총리에 대한 인준에 앞서 여론조사를 해보자고 제의했다. 새누리당은 “헌법 무시이자 국회 부정”이라고 비판했지만 누구를 나무랄 처지가 못 된다.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을 히틀러에 비유했던 정청래 새정치연합 의원이 당 안팎의 경고에도 계속 ‘말 폭탄’을 날리고 있는 것도 여론조사라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2·8전당대회 때 국민 여론조사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얻어 최고위원이 됐다고 강조한다. 일부 열성 지지층의 반응을 ‘민심’으로 착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이 또한 여론조사 만능주의의 폐해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정치인들에게 신뢰성도 불확실한 지지도 수치를 시시각각 알려주는 것은 역기능이 클 수 밖에 없다.

한국 대통령들은 취임 초 반대 세력에 의해 이런저런 이유로 일격을 당한 뒤 5년 임기 가운데 2, 3년 정도 보내고 나면 지지율이 크게 하락하면서 아무 힘도 쓰지 못하고 퇴임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국가적인 의사 결정이 여론의 눈치를 보며 끝없이 미뤄지는 현상도 과거보다 두드러진다. 게다가 디지털 시대를 맞아 누리꾼들이 특정 정책에 반대하기 위해 인터넷 안에서 결집하면 누구도 거역하기 힘들다. 합리적 반대인가, 불합리한 반대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이른바 ‘신종 거부권’이다. 대통령 지지율 중계는 정책 결정의 지체 현상을 더 심화시킬 것이다. 지지율을 의식한 포퓰리즘으로 정치가 엉뚱한 곳으로 향할 수도 있다. 한국 이외에 미국에서도 대통령 및 대선주자 지지율이 매일 집계된다고 하지만 그 위력은 우리만큼 크지 않다.

세계 역사에서 성공한 국가들은 의사 결정이 빠른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정반대의 상황이다. 여론조사에 대한 과신은 나라를 더 깊은 수렁으로 몰아갈 위험이 크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박근혜#지지율#여론조사#중독 증세#수렁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주요뉴스

1/3이전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