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구자룡]사드재난구역 걱정하는 중국 교민사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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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가 지난달 10일 개최한 베이징 행사에서 사회자가 한국인 참석자를 갑자기 일으켜 세우고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이 확정됐으니 축하의 박수를 보내자.”

기자의 지인인 이 한국인은 다음 날 지방 출장을 가서도 문 대통령 당선 덕을 봤다. 비교적 규모가 큰 쇼핑몰 건설 인허가 건이 걸려 있는 한국 기업 관계자와 함께 지방정부 관리를 만났다. 관리는 면담 도중 잠깐 나갔다 오더니 “시진핑 주석과 문 대통령이 오늘 통화도 했다는데 인허가 건을 잘 검토해 보겠다”며 인심을 썼다. 그날 시 주석은 당선 이틀째인 문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문 대통령의 정치 철학과 이념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정부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발표한 이후 중국은 한국으로 가는 단체관광 금지를 비롯해 전방위 보복을 했다. 한중 관계는 꽁꽁 얼어붙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 당선 이후 분위기가 바뀌는 듯했다.

지난달 14, 15일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一帶一路·21세기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 포럼에 박병석 의원(더불어민주당)을 단장으로 한 대표단이 급히 파견되고 일정에도 없던 시 주석과의 면담도 이뤄졌다. 18일에는 이해찬 전 총리(민주당 의원) 등 특사단이 왕이 외교부장 및 시 주석과 만났다. 이 특사는 “7월 독일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한중 정상회담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난 현재 한중 관계는 돌파구 마련을 위해 공회전만 몇 번 하다 멈춘 분위기다. 관영 환추시보는 또다시 “사드가 배치되면 한국은 전기 감전의 충격을 느낄 것” “군사적 대응도 고려해야 한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결국은 배치할 것 아니냐’며 미리부터 단정하는 분위기다.

이달 말 한미 정상회담에서 사드 문제가 어떻게 정리되느냐에 따라 다음 달 초 한중 정상회담이나 8월 수교 25주년 기념행사, 나아가 한중 관계의 방향은 또 한 번 고비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사드 배치에 속도를 높이라고, 중국은 빠르든 늦든 배치되는 것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한국은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중국 교민사회는 한미 정상회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회담이 다음 달 한중 정상회담의 원만한 개최로 가는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는 것이다. 한중 정상회담이 탈 없이 개최되면 분위기 전환의 신호탄이 되리라는 기대다.

재중국 한국인회의 한 간부는 “사드 보복으로 인한 교민 및 중국 진출 기업의 피해를 과소평가하려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 하지만 실상은 사드재난구역이라도 선포해야 할 판”이라고 절박한 상황을 전했다. 이 간부는 삼성 휴대전화와 현대자동차 등 주력 제품까지 중국 시장에서 경쟁력이 흔들리는 판에 사드 사태로 중국 소비자들의 태도마저 냉담해져 교민사회가 버티기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교민들은 잇단 미사일 발사와 한국 민간단체의 방문 불허 등으로 문재인 정부의 남북 관계 개선 의지에 찬물을 끼얹고 6차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는 북한에 대해서도 우려가 크다. 북한의 도발이 계속될 경우 미국의 한반도 사드 배치 정당성은 점점 커져가고 그로 인해 한중 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사드재난구역 선포’만은 피하고 싶다는 게 교민들의 하소연이다.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
#사드재난구역#중국 교민사회#한미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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