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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박정훈]트럼프에 호구 잡힌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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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박정훈]트럼프에 호구 잡힌 대한민국

박정훈 특파원 입력 2017-05-17 03:00수정 2017-05-17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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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워싱턴 특파원
말은 입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 80개 안면 근육의 조합물인 표정에선 속마음이 읽힌다. 남을 깔보는 마음은 그래서 쉽게 티가 난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언급할 때가 그렇다. 눈은 살짝 찡그린 채 옅은 미소로 입을 삐쭉 내밀고 말한다. “공짜 안보는 없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최악”이라고…. 보호나 받는 주제에 단물만 빨아먹고 있다는 뉘앙스다. 대단한 약점이라도 잡고 있다는 듯 ‘까불면 재미없다’는 식의 협박 투까지 섞인다.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에 한국은 호구(虎口)가 잡혔다. 호랑이 입에 들어간 신세…. 합의 같은 건 모르겠고, 사드 비용을 내라고 생떼를 쓰는 건 한국이 그에게 어떤 존재인지 잘 보여준다. 필리핀의 독재자 두테르테에겐 비위나 맞추면서 한국에는 함부로 해도 뒤탈이 없다는 식이다. 워싱턴포스트가 “외교적 무례에도 한국이 놀라울 정도로 차분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썼을 정도다.

한미동맹. 금과옥조로 여기는 이 말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처량한 신세가 돼 가고 있다. ‘2개 받고, 5개 가져갔으니 3개 내놔라’는 손익계산에 가치를 중시해 온 한미동맹은 허울만 남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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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국내 정치에서 까먹은 점수를 해외에서 따려고 한다. 언론은 러시아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그를 탄핵으로 몰고 갈 기세고, 지지율도 38%(15일 갤럽)까지 떨어졌다. 내년 중간선거를 앞둔 공화당도 여차하면 삐딱선을 탈 분위기다. 시리아 공습과 대북 군사압박으로 재미 좀 보더니 피를 나눈 혈맹인 우리까지 함부로 대하고 있다.

트럼프가 야당과 주류 언론으로부터 “비열하다”는 소릴 자주 듣는 건 장사꾼 기질 탓이다. 툭하면 남 탓에, 상대 약점을 물고 늘어져 원하는 걸 얻는다. 말이 좋아 협상 전략이지 정의를 추구한다는 미국의 리더답지 못한 행동이다. 트럼프의 욕심은 양심보다 쉽게 상처받는 모양이다.

제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에는 과잉 친절을 베푼다. 아베 신조 총리를 얼굴도 모르는 자신의 지인 결혼식에 데려간 건 볼썽사나운 일이었다. 미일동맹만 굳건하면 한미동맹은 대강 해도 된다는 걸까.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미국이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허용해 동북아 지역에서 더 많은 안보 역할을 맡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주 만난 한반도 전문가는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에 대해 “트럼프가 김정은보다 정상일 거라고 믿지 말라”고 말했다. 지상군을 북한의 볼모로 둘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철수시킬 수 있다는 의미였다.

문재인 정부에 트럼프 시대는 외교적 재앙이 될 가능성이 있다. 다음달 말로 잡힌 한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분명 민낯을 드러낼 것이다. “위대한 동맹” 한마디 하곤 곧장 청구서를 내밀 가능성이 높다. 들어주면 ‘등신외교’ 소리 듣고, 안 들어주면 “친북 좌파가 한미동맹 망친다”고 비판받을 수도 있다.

트럼프는 문 대통령의 이런 약점까지 파고들 것이다. 뜻대로 안 되면 문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홀대하면서 동맹 악화 책임을 떠넘길 가능성이 크다. 워싱턴 외교가에서 ‘정상회담을 8월로 미뤄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다. 내달에 만나면 요구사항을 ‘들어줄 듯 말 듯’ 애를 태워야 한다.

진보는 북한을, 보수는 한미동맹을 낭만으로 바라본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은 이제 과거의 미국이 아니다. 그래서 보수도 낭만을 걷어내야 한다. 정치권도 함부로 한미 외교를 정쟁거리로 삼아선 안 된다. 지금은 정부가 국익만 생각하며 대응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한번 호구 잡히면 영원히 호구 된다.
 
박정훈 워싱턴 특파원 sunshade@donga.com


#도널드 트럼프#미국 우선주의#한미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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