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특파원 칼럼/부형권]내가 아는 송민순에 대해
더보기

[특파원 칼럼/부형권]내가 아는 송민순에 대해

부형권 뉴욕 특파원 입력 2017-05-01 03:00수정 2017-05-01 03:00
뉴스듣기프린트
트랜드뉴스 보기
부형권 뉴욕 특파원
송민순(69).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고 외무고시 9회 출신. 외교통상부(현 외교부) 북미국장, 기획관리실장, 차관보를 거쳐 장관까지 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국제안보비서관, 김대중 대통령의 외교통상비서관, 노무현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을 지냈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 북핵 6자회담 등의 수석대표도 지냈다.

“한미 관계에서 관행적으로 쓰는 ‘철벽공조’란 외교적 수사(修辭)를 싫어한다. 나라가 다르고, 국익도 다른데 어떻게 철벽처럼 빈틈없이 공조가 되나. 한쪽의 이해를 다른 쪽이 그대로 따라갈 때나 ‘철벽공조’가 가능한 것 아닌가.”

2000년 처음 만난 북미국장 송민순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북미통이면 “한미동맹 철벽공조 이상 없습니다”만 앵무새처럼 외칠 것이란 내 선입견이 깨졌다. 그는 늘 “외교관은 목이 뻣뻣할 수밖에 없다. 남의 말에 승복하는 게 아니라 남을 설득하는 게 직업이기 때문이다. 외교관이 ‘예,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다음부터 잘하겠습니다’라며 고개 숙이면 나라가 어찌 되겠나”라고 말했다.

송민순은 말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었다. SOFA 개정 협상을 하다가 미 대표단이 ‘주한미군 철수’까지 거론하며 무리한 요구를 하자 “이렇게 나오면 협상 못 한다”며 의자를 돌려 앉아 버렸다. 미사일 지침 개정 협상 때도 미 측이 “청와대와 직접 정치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나오자 송민순은 “백악관이 청와대를 설득할 수 있을지 몰라도, 청와대가 우리 대표단을 설득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협상장을 박차고 나갔다. 미국은 이런 송민순을 ‘커널(대령) 송, 제너럴(장군) 송’이라고 불렀고, 때론 ‘민족주의자(nationalist)’라고 표현했다. 외교관에게 ‘넌 외교관이 아니야’라고 한 셈이다. 미 측 파트너가 “중앙정보국(CIA)의 ‘송민순’ 인물파일에 ‘협상 스타일이 아주 거칠고, 말귀도 잘 안 통한다’고 써 있다”며 “그러나 ‘자신이 한 말은 잘 지킨다’고 해서 그나마 협상에 대한 희망을 가졌다”고 말한 적이 있다. 송민순이 주도했던 민감한 협상들이 파국 대신, 궁극적으로 타결됐던 이유 중 하나가 그 진정성(integrity)이다.

주요기사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송민순을 중용한 것도 같은 이유다. 당시 청와대와 외교안보팀 일각에선 “대통령에게도 대들 사람”이라며 반대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그래도 송민순이 진정성은 있잖아”라고 옹호했다.

그런 송민순이 노 전 대통령의 계승자를 자임하는 여론조사 1위 대선 후보와 ‘진실 공방’을 벌이면서 허위사실 유포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까지 됐다. ‘색깔론 유포자’ ‘거짓말쟁이’로 공격받기도 한다. 적과 아군밖에 없는 전쟁 같은 대선이 송민순을 송두리째 삼켜버렸다.

송민순은 문학도(독문학)답게 복잡하고 민감한 외교 현안을 비유적인 표현으로 설명하곤 했다.

“북핵 문제는 한국에는 한민족의 생존이 걸린 문제지만, 미국에는 ‘핵 비확산’이란 세계 전략의 문제다. 미국이 ‘체스판’(비확산 전략)을 꺼내 놓으면 한국은 ‘장기판’(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체스판에선 미국에 판판이 깨질 수밖에 없다. 적어도 미국에 ‘체스 한 번 뒀으면, 다음엔 장기를 두자’고 할 수 있어야 한다.”

누가 한국의 대통령이 되든, 예측불허 희대의 협상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상대해야 한다. 비록 송민순은 은퇴했지만, 체스판을 장기판으로 바꿀 줄 아는 전략적 마인드를 가진 외교 수장이 필요한 때다.
 
부형권 뉴욕 특파원 bookum90@donga.com


#송민순#sofa 개정 협상#민족주의자#송민순 진정성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주요뉴스

1/3이전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