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서영아]좋은 이웃, 나쁜 이웃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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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아 도쿄 특파원
서영아 도쿄 특파원
한반도 위기를 빙자해 일본에서는 당장 내일이라도 전쟁의 포화가 터질 듯한 불안감을 조장하는 목소리가 넘쳐난다. 일본 정부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공격이 있을 경우 피란 방법을 내각관방 홈페이지에 싣고 한반도 유사시 자국민을 구출할 방도를 날마다 거론 중이다.

요미우리신문은 22일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경우 어떤 상황이 전개될 것인지 시나리오를 상세하게 소개했다. 먼저 미국이 전 세계의 타격력을 한반도 주변에 모을 것이고 공격은 동트기 직전이 될 가능성이 크며 전투는 수일 만에 승부가 나는 단기전이 될 것이라는 식이다. 한국에 대한 북한의 반격 리스크가 커서 실현되기 어렵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라면 무슨 일을 할지 모른다”는 단서가 따라붙는다. 산케이신문은 23일 미국의 선제공격 전 단계로 북한에 대한 해상봉쇄가 예상되나 일본 자위대의 활동을 가로막는 각종 제약이 많아 ‘구멍’이 생길 수 있다며 우려했다.

산케이신문에는 며칠 전 메이지(明治) 유신의 원로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1888년 주장한 일본의 방위 개념을 소개하며 한반도 유사시 일본의 대응을 촉구하는 칼럼이 실렸다. 일본의 자위를 위해 첫째로 ‘주권선(主權線·국토)’, 둘째로 ‘이익선(利益線)’의 안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익선이란 국토의 방위에 밀접하게 관계되는 장소, 즉 한반도를 말한다. 한반도 방위 없이는 일본의 자위는 이뤄질 수 없다는 생각은 훗날 조선 침략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활용됐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일본군을 조선에 출병시킨 당시 외상 무쓰 무네미쓰는 회고록에서 “조선의 혼란은 이웃국의 정리로서도 또 자위를 위해서도 수수방관할 수 없었다”고 했다.

산케이신문 칼럼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이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하겠다”고 말했을 때 ‘우리’에는 미일동맹이 포함된다며 북한이 일본을 직접 공격할지와 상관없이, 자위의 차원에서 한반도 유사시 일본의 대응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웃’이라 하면 또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일본 1만 엔권 지폐의 주인공이기도 한 ‘일본 근대화의 창시자’ 후쿠자와 유키치는 한때 “아무리 나쁜 이웃이라도 그의 집에 불이 나면 우리 집도 타게 된다”며 조선의 근대화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다 1884년 자신이 지원한 갑신정변이 ‘3일 천하’로 끝나는 것을 본 뒤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주창해 일본을 제국주의로 이끌었다.

21세기 일본이 자국 국민의 안전을 중시하고 자국의 국익과 방위를 최우선시한다는데 뭐라 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그 정도에 있다. 요즘 아베 신조 정권의 움직임을 보면 자신들의 설레발로 인해 더욱 불안한 기류에 휩싸이게 될 이웃나라는 안중에도 없는 걸로 보인다. 여기 더해 한반도 안보가 자국의 이익과 직결된다는 논리도 수상쩍기 짝이 없다.

현대사회에서 식민지배가 재현될 리는 없다. 다만 무쓰나 후쿠자와의 말마따나, 바로 이웃나라이기 때문에 한쪽의 불행이 다른 한쪽의 행운으로 작동하는 일은 있다. 1950년 6·25전쟁이 터졌을 때, 요시다 시게루 당시 일본 총리는 ‘덴유(天佑)!’라며 반색했다. 천우신조라는 얘기다. 전후 불황에 허덕이던 일본은 6·25전쟁의 기지 역할을 하면서 순식간에 번성했다. 전쟁을 계기로 미국의 대일 점령 정책은 일본을 무장해제해 동양의 농업국가로 만들려던 것에서 180도 바뀌었다. 미일안보조약이 체결되고 재군비가 진행됐다.

연일 터져 나오는 정권 내부의 스캔들로 답답한 아베 정권이 혹시라도 당시의 행운이 다시 올 것을 꿈꾸는 게 아니길 빈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미일동맹#북한#후쿠자와 유키치#아베 신조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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