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김태룡]태풍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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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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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룡 국가태풍센터장
김태룡 국가태풍센터장
올 들어 다섯 번째로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제16호 태풍 산바가 지나갔다. 지난 30년간 영향을 준 태풍이 연평균 3.1개이니, 평년보다 많은 건 분명하지만 드문 일은 아니다. 한 해 5개의 태풍이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건 2004년 이후 8년 만이지만 이런 해는 30년 동안 9번이나 됐다. 그러나 태풍의 발생빈도 및 영향을 주는 태풍이 줄어드는 추세를 생각해보면 이상기후처럼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올해 태풍으로 인한 피해 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다. 15호 태풍 볼라벤과 14호 태풍 덴빈의 피해가 제대로 집계되지도 않았는데 산바가 닥쳐 어려움을 더했다. 세 개의 태풍은 모두 상륙하기 5일 전부터 알려져 국민과 정부가 사전대비를 했다. 엄청난 태풍의 위력 앞에서 어느 정도 재산 피해는 어쩔 수 없었지만, 인명 피해를 최소화한 것은 천만다행이다.

보통 태풍 하나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 1만 개의 위력을 갖고 있다. 흔히 전 세계 기후를 변화시키고 주변을 초토화했던 1883년 인도네시아 크라카토아 화산 폭발의 10배에 맞먹는 에너지를 가졌다고 비유되기도 한다.

계절은 어김없이 변하고 있다. 여름철 무더위와 집중호우로 우리를 힘들게 했던 북태평양 고기압의 세력도 약화되며 동남쪽으로 물러나고 있다. 그 대신 이동성 고기압이 주기적으로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 고기압은 요즘처럼 맑고 쾌청한 가을 날씨를 가져다준다.

태풍은 올해 말까지 8∼10개는 더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점차 수축하고 있고, 남해상으로 북상하더라도 동쪽으로 전향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10월에도 태풍이 내습한 사례는 있다. 1904년부터 2011년까지 8개의 태풍이 10월에 우리나라에 영향을 줬다. 10년에 한 번꼴도 안 되니 통계적으로도 가능성이 작다. 올해는 8, 9월에 잇달아 3개의 태풍이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며 태풍 진로상에 있는 동중국해의 에너지를 소모시켜 가능성을 더 떨어뜨렸다.

태풍은 열대지방과 한대지방의 에너지 불균형을 바로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태풍은 열대 해역에 축적된 과잉 에너지를 고위도 지방으로 수송해 주는 에너지 중재자다. 그러나 에너지가 수송되는 과정에서 강풍, 폭우와 같은 극단적인 기상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태풍이 지나가는 지역에서는 엄청난 재해가 일어난다. 반면 어떤 지역에서는 강수로서의 수자원을 확보해주고 대기와 바다에 축적된 오염을 해소해주는 환경 정화 역할도 한다. 이런 이유로 태풍은 원자력과 비교된다. 일시적으로 에너지가 폭발하면 재앙이지만, 에너지를 조정해 사용하면 귀중한 자원이 될 수 있다.

태풍 재해를 줄이기 위한 중요한 방법은 태풍의 영향력에 대해 국민들과 잘 소통하는 것이다.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태풍 예보의 정확도가 떨어진다. 48시간 평균 예보 오차는 200km 미만이지만 5일 평균 예보 오차는 500km가 넘는다. 그렇지만 오차 범위가 큰 5일 이상의 예보라 할지라도 영향 유무에 대해선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피해에 대비할 수 있는 정보로서의 가치는 매우 크다.

태풍예보의 정확도는 미국, 일본, 유럽 같은 기상 선진국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현대 과학의 한계로 보지만, 지속적인 연구와 기술향상으로 정확도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언젠가는 5일 이상의 예측 정확도가 오늘내일의 정확도와 비슷하게 될 것이다.

태풍으로 인한 재해는 과학의 힘으로 줄일 수 있다. 태풍을 일상적인 자연현상으로 보지만 말고, 재해를 줄이면서 태풍이 가져다주는 혜택을 활용할 수 있도록 꾸준한 관심과 연구개발이 필요하다.

김태룡 국가태풍센터장
#태풍#피해#태풍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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