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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王실장과 그때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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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王실장과 그때 그 사람

동아일보입력 2013-08-12 03:00수정 2013-08-12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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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정치 배운 박 대통령, 그 아버지를 잘 아는 김기춘
비서실장 이상의 王멘토… 과거를 졸업한 국민은
대통령의 집착이 불안하다… 딸은 아버지를 극복할 수 없는가
김순덕 논설위원
조만간 ‘왕실장’이라는 말을 못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박근혜 대통령한테 그런 호칭에 불편한 마음이라고 했다는 후문이다.

대통령이라고 편할 리 없다. 대통령은 취임 초 언론에 등장하는 자신의 호칭이 ‘박 대통령’이었으면 좋겠다고 밝혀서 ‘GH’ 같은 영문 약칭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어쩌면 대통령이, 아니면 왕실장이 불편한 호칭은 삼가 달라고 주문할지도 모를 일이다.

국민의 마음은 더 불편하다. 이런 민심을 예상 못했을 리 없는 대통령이 굳이 왕실장을 임명한 배경을 파고들면 더 불안하다. 지난 주말 이영작 전 한양대 석좌교수는 채널A에 출연해 재미있는, 그러나 의미심장한 분석을 했다.

“박 대통령은 정치를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당시 김기춘 씨가 청와대에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의중을 잘 파악하고 있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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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대통령 이름을 헷갈린 게 아닌가 싶었는지 앵커는 “박근혜 대통령이냐?” 물었다.

“아니 박정희 대통령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레퍼런스 포인트(reference point·준거점)가 항상 아버지일 거다. 김기춘 실장은 (박 대통령의) 아버지를 잘 안다. 그래서 멘토 겸 비서실장의 역할을 하게 된 거다.”

이 말이 옳다면 이젠 왕실장이 아니라 ‘멘(토)실장’이라고 불러야 할 판이다. 벌써 왕실장 말을 대통령 의중으로 알고 내각까지 바짝 긴장한 상태인데 박정희 대통령의 의중마저 현시(顯示)한다면 왕실장의 무게는 상상을 초월한다.

물론 젊은 검사 시절부터 탄탄대로를 달려온 그가 월권을 하거나 역린(逆鱗)을 건드려 궤도이탈을 할 리는 없다. 대통령이 강조한 대로 ‘새로운 마음으로 민생에 최대 역점을 두고 국정에 임한다’면 박수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안한 이유는 국민은 이미 1970년대를 ‘졸업’했는데 대통령은 자꾸만, 아닌 듯하다가도 다시, 그때 그 시대 아버지의 유산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정치리더십을 연구한 스테퍼니 포스터 미국 아메리칸대 교수는 “여성 정치수반의 3분의 1이 암살된 남편이나 부친의 뒤를 이어 그 자리에 올랐다”고 했다. 아시아와 남미 여성지도자는 거의 대부분이 그렇다. 이들에게는 남편이나 아버지의 리더십을 이어받는 것이 자연스럽고도 안전할지 모른다. 우리나라보다 2년 뒤인 1947년 8월 15일 독립한 인도에서 인디라 간디도 그랬다.

그의 부친이자 독립국가 인도의 첫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가 택한 체제는 국가 주도의 사회주의 경제였다. 1966년 총리가 된 인디라 간디는 ‘가리비 하타오(garibi hatao·빈곤 퇴치)’라는 아버지의 뜻을 내걸고 은행국유화 가격통제 등 경제의 고삐를 조였다.

그러나 빈곤은 퇴치되지 않았다. 거꾸로 부친의 정책을 뒤집었을 때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평가한다. 오히려 1970년대 녹색혁명과 1980년대 경제자유화를 통해 빈곤 퇴치라는 아버지의 ‘뜻’에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11월 칠레 대통령선거에 재도전하는 미첼 바첼레트 전 대통령은 의사 출신이면서도 육군전쟁아카데미에서 군사과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장군의 딸’이다. 부친은 군사 쿠데타에 반대하다 1973년 고문 끝에 숨졌다. 2002년 남미 최초의 여성 국방장관이 되어 군부로부터 “다시는 칠레의 민주주의를 뒤엎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받아내고, 2010년 1월 대통령 퇴임 직전에 군사독재 희생자 추모 인권박물관을 개관하는 등 그는 개인적 유산을 나라 바로 세우기로 승화시켰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퇴임 무렵의 80%가 넘는 지지율을 설명할 수는 없다. 교육개혁을 주장하는 학생데모와 교통대란 때문에 53%로 출발한 바첼레트의 지지율은 한때 35%까지 떨어졌다. 구리 수출 붐으로 벌어들인 막대한 외화를 왜 대선공약대로 복지 확대에 쓰지 않고 국부(國富)펀드에 쟁여 두느냐는 비판도 쏟아졌다.

반전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였다. 수출이 30%나 격감하면서 민생이 어려워질 조짐을 보이자 바첼레트는 이럴 때를 위해 대비한 국부펀드를 풀었다. 극빈층을 위한 연금보장 등의 연금개혁을 여야협상으로 성공시켰고, 저소득층에 현금 지원금을 나눠줬으며, 중산층을 위한 감세와 3500개의 어린이집 설치도 빼놓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성과란 이런 것이다. 높은 지지율은 그에 대한 훈장이다. 당장 대선공약 실천에만 집착했다면 가능했을까.

고 노무현 대통령은 좋아해도 유훈통치에 매달리는 친노를 좋아할 수 없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박정희 향수를 지닌 사람이라 해도 1970년대 식의 리더십까지 쌍수 들어 환영할지 의문이다. 국정의 중추기관장으로서 부처를 장악하고 정책을 집행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다면, 대통령은 비서실장 아닌 국무총리를 바꿨어야 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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