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마스크 전쟁 속 우리 안의 선한 본성[광화문에서/김유영]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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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마스크와 아파트는 지금이 가장 싸다고 했던가. 마스크 가격은 사정없이 올라갔고 마스크를 게릴라로 판다는 쇼핑몰은 오픈 즉시 품절. 아기가 있는 데다 병원을 오가는 부모님도 계셔서 당장 쓸 마스크가 필요했다. 마스크 요일제로 구할까 했지만 업무시간 약국 방문은 힘들 듯했다. 주말에 인터넷 중고카페를 찾았다.

그곳은 아우성이었다. 마스크 판매 글이 올라오기 무섭게 ‘거래 완료’라는 딱지가 붙었다. 마스크를 사려면 관련 키워드에 알람 설정을 해놓아야 했다. 그랬더니 2, 3초 단위로 ‘마스크 팝니다’ ‘마스크 삽니다’ 등이 죽죽 올라왔다.

흡사 게임이었다. 새 글을 읽자마자 사기 여부를 재빨리 판단하고 다음 액션을 취해야 했다. 글쓴이 거래 내역이 좀 있다면 실제 판매자일 확률이 높고, 내역이 별로 없고 연락처까지 안 나왔으면 단속을 피하려는 업자일 수 있다.

실제 판매자인 것 같아 사겠다는 댓글을 달면 이미 댓글 10여 개가 좌르르 달려 있다. 댓글에서 인사는 사치. ‘저요’ 혹은 ‘저’로 짧게 때워야 먼저 달 수 있다. 그러고도 실패하면 또 다른 판매 글에 ‘도전’해야 한다.

연락처가 있어도 안심은 금물. 통화 후 판매자의 투박한 말씨에 왠지 안심되어 마스크 값을 부칠 계좌번호를 문자로 받는 순간, 미리 깔아 놓은 ‘사기 감지 앱’에서 알람이 뜬다. 해당 계좌로 송금했는데 마스크는 안 오고 연락 두절이었단 글이 줄줄이 나온다.

중고카페도 그 나름의 시장인지라 수급 상황뿐 아니라 정책 영향도 받았다. 공적 마스크를 푼다고 하자 마스크를 판다는 글이 산다는 글보다 많아지며 마스크 가격은 장당 2500원에서 2000원으로 주저앉았다. 하지만 이후 가격은 오히려 올랐다. 공적 마스크를 구하기 쉽지 않다는 사실이 입증되자 한때 5000원으로 치솟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1500원에 판다는 글에 구매 의사를 밝히니 누군가가 ‘사기꾼이니 조심하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무조건 직거래 해야겠다는 점을 이내 터득했다. 마침 “돈이 급해 마스크 처분하니 직거래만 하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거래 내역도 풍부했다. 바로 댓글을 썼지만 한발 늦었다. 판매자는 웃돈을 주겠다는 댓글에 “거래 중”이란 글을 달았다.

조금 뒤,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판매자 연락이었다. 웃돈 주겠다는 사람은 마스크를 사들이는 업자인 것 같으니, 아기 있는 집에 팔고 싶다는 것. 기자의 육아 물품 거래 내역을 본 듯했다. 모두 어려운 시기라 그냥 드려야 하는데 돈 받고 팔아야 하는 상황을 양해해달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중고카페에는 황사 때 사둔 마스크를 약국에 줄서기 힘든 노인에게 드리겠다는 사람, 외출이 줄어 마스크가 많이 필요하지 않으니 확진자가 많이 나온 도시 거주자에 우선 팔겠다는 사람, 마스크 사기 방지 글을 올려주는 사람이 있었다. 거래를 계기로 건강관리 등 안부를 주고받는다는 사람도 있었다.

정부 대응에 아쉬움이 많지만 개인들은 자체적인 질서를 구축하며 견디고 있었다. 마스크를 못 구해 중고카페를 헤매며 각자도생에 나선 이들은 안온한 마스크를 나누며 각자도생을 함께 넘어서고 있었다.
 
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abc@donga.com
#코로나19#마스크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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