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뭐가 우선인지 갈피 못 잡는 정부[광화문에서/유재동]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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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동 경제부 차장
유재동 경제부 차장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경제부처 고위 공직자였던 A 씨는 최근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해 얘기하면서 다음과 같은 위기 대처 이론을 소개했다. 첫째, 위기에 처음 맞닥뜨렸을 때는 가급적 신속하고 강도 높게 대응한다. 둘째, 나중에 상황이 좀 나아졌다고 절대 방심하지 말고 출구전략은 최대한 천천히 가동한다. 요약하면 ‘들어갈 때는 과감하게, 나올 때는 신중하게’ 한다는 원칙이다. 곡선 주로를 운전할 때 진입은 천천히 하고 빠져나올 때는 속도를 높이는 주행 원리와 정반대라 생각하면 편하다.

완전한 회복을 확인하기도 전에 긴장을 풀었다가 화를 입은 사례는 세계 경제사(史)에 자주 등장한다. 미국 중앙은행은 1930년대 중반 대공황 탈출 조짐이 보이자 서둘러 금리를 올렸다가 경제를 다시 침체의 수렁에 빠뜨렸다. 일본도 1990년대 경제 여건이 받쳐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증세로 전환한 것이 불황을 키웠다. 이런 실패의 역사에서 깨달음을 얻은 미국은 10년 전 금융위기 때는 위기 대응의 교과서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초기엔 양적완화와 제로금리라는 미증유의 통화정책을 전격 도입해 위기 확산을 막았지만, 이를 되돌릴 때는 테이퍼링과 금리 인상, 자산 축소 등 스텝을 차분히 밟아나가며 장장 10년 이상 시간을 끌었다.

우리 정부도 코로나 사태 초기엔 이 원칙을 잘 숙지한 듯했다. 적어도 문재인 대통령이 1월 말 “과하다 싶을 정도로 강력한 선제조치”를 강조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그 후로는 어찌 된 일인지 ‘과한 선제조치’보다는 2% 부족한 대책이 반 박자씩 늦게 이어졌다. 잘못된 대응의 정점은 지난달 13일 “코로나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는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그날 이후 20일 ‘짜파구리 오찬’까지 약 일주일 동안 행정부의 긴장이 풀어진 대가는 지금 국가 전체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 사이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가 요즘 연일 수급 대란을 맞고 있는 마스크 사태는 그중에서도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조직 관리 전문가들은 큰 위기가 닥쳤을 때의 초기 대응을 보면 그 조직의 가치관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정부는 총선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코로나 사태를 애써 부정하려는 듯 끌려가며 대응하다가 조금 상황이 호전되는 것 같으니까 바로 방역에서 경제로 깃발을 바꿔 들었다. “이대로 경제가 추락하면 총선이 위험해진다”는 목소리가 여권에서 근거 없는 낙관론을 키운 결과다. 한발 늦은 대응, 섣부른 희망, 정치논리의 개입, 전문가 배제 등 위기 대응 실패를 위한 재료가 총동원됐으니 애초부터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없었다. 방역과 경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는커녕 둘 다 놓쳐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지난주 발표된 코로나 민생대책에는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신용카드 공제 확대, 국내 휴가비 지원 같은 전통적인 내수 지원책이 모두 담겼다. 하루에도 확진자가 수백 명씩 쏟아지며 감염 공포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새 차를 사고 밖에 나가 돈을 쓰라고 부추기는 정책은 아무 의미가 없다. 지금은 사람들이 돈이 없어서 안 쓰는 게 아니다. 정부는 아직도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한 모양이다.
 
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
#코로나19#총선#민생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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