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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심판 보는 시대, ‘악당’이 사라지는 시대[광화문에서/이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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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심판 보는 시대, ‘악당’이 사라지는 시대[광화문에서/이헌재]

이헌재 기자입력 2019-12-26 03:00수정 2019-12-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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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자, 이제 ‘악당’을 등장시킬 차례다.”

고(故) 레너드 코페트가 자신의 저서 ‘야구란 무엇인가’에서 묘사한 심판의 모습이다. 이 책은 1967년에 처음 출간됐다. 52년 전에도 심판은 선수와 팬들 모두로부터 공격받는 ‘공공의 적’이었던 셈이다.

앞으론 반세기 넘게 지속된 심판에 대한 이런 평판도 달라질지 모르겠다. 며칠 전 야구의 미래를 바꿀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심판협회가 ‘자동 볼-스트라이크 시스템(Automated ball-strike system)’ 개발과 실험에 함께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르면 5년 안에 인공지능(AI)을 장착한 로봇 심판이 메이저리그에 도입된다.


로봇 심판의 작동 원리는 다음과 같다. 야구장에 설치된 레이더가 투수의 공 궤적을 쫓아 판정을 내린다. 이를 홈플레이트 뒤에 서 있는 인간 심판에게 전달한다. 무선 이어폰으로 내용을 전달받은 인간은 ‘기계적’으로 스트라이크나 볼을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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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이미 올해 독립리그 애틀랜틱리그에서 로봇 심판을 테스트했다. 내년 마이너리그 싱글A를 시작으로 상위 리그로 점차 적용 범위를 확대할 방침. 시기의 문제일 뿐 ‘로봇 심판’의 도입은 기정사실에 가깝다. KBO리그 역시 로봇 심판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팬들은 압도적으로 ‘로봇’을 응원한다. 대다수의 팬들은 ‘로봇 심판’의 공정성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로봇의 가장 큰 장점은 ‘일관성’이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건 상대 팀이건 스트라이크 존은 항상 일정할 것이다. ‘이승엽 존’, ‘송진우 존’ 등으로 불렸던 특정 스타플레이어들에 대한 관대한 판정도 사라지게 된다. 억울한 볼 판정도 없어지게 된다.

모든 선수들이 나이와 연차, 팀에 관계없이 공평하게 경쟁한다.

하지만 모든 게 장밋빛인 것은 아니다. 포수의 주요 자질 중 하나인 프레이밍(스트라이크처럼 보이게 공을 잡는 것)은 그 빛을 잃어갈 것이다. 포수가 공을 놓치건, 어설프게 잡건 AI가 설정한 스트라이크 존만 통과하면 그 공은 스트라이크가 된다. 올 시즌 테스트에서도 원바운드에 가까운 공이 스트라이크 콜을 받기도 했다. 로봇에 항의하다 퇴장당하는 선수도 나왔다. 겉으로는 인간이 로봇에 밀리는 모양새다.

흔히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고 한다. 하지만 거의 매 경기 심판은 판정 때문에 ‘욕받이’가 되어 왔다. 스트라이크와 볼의 경계에 선 공을 판정할 때마다 심판은 어느 한쪽으로부터는 욕을 먹어야 했다. 이제는 그런 부담 없이 ‘앵무새’처럼 기계가 시키는 대로 판정을 외치기만 하면 된다. 몇 해 전부터는 비디오 판독이 도입되면서 세이프-아웃 판정에서도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다. 더구나 심판들은 새 시스템 개발에 참여하면서 메이저리그 사무국으로부터 적절한 보상까지 받기로 했다.

드라마가 더 재미있으려면 악역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미래의 야구에서 심판은 더 이상 ‘악당’이 아니다. 언제나 좋은 핑곗거리가 되었던 ‘공공의 적’이 사라진 야구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uni@donga.com
#야구#심판#자동 볼-스트라이크 시스템#인공지능 로봇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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