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대 무산되면 의대 정원 늘려라[광화문에서/우경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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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경임 논설위원
우경임 논설위원
‘우리나라에 의사 수가 많다는 걸 의사 말고 누가 동의할까.’

2월 설 연휴 응급의료 공백을 막기 위해 밤샘 근무를 하다 순직한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 그가 생전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우리나라 의사 수가 공급 과잉이라고 주장한 대한의사협회 홍보물을 띄우고는 이렇게 개탄했다.

의협은 그 근거로 면적당 의사 밀도를 댔다. 10km²당 10.44명으로 의사 접근성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 이는 의사 수를 줄여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런 논리라면 땅덩이 작은 우리나라는 대통령이나 방탄소년단(BTS) 접근성도 세계 최고일 거다. 윤 센터장은 순직하기 직전 일주일 동안 129시간 30분을 근무했다. 의사 부족에 허덕이는 응급의료, 바로 그 현장에서.

고인의 글이라 망설이다 이를 인용한 것은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원의 운명이 곧 결정돼서다. 공공의대 설립 법안은 22일 공청회를 거쳤고 27, 28일 국회 보건복지위 법안소위 심사가 예정돼 있다. 4년제 의학전문대학원인 공공의대는 학비를 국가가 전액 부담해 의사를 길러내 10년간 의료 취약지역에서 근무하도록 한다.

의료계는 결사반대한다. 지역 간, 전공 간 의료 격차를 통계로 보면 공공의료 인력 양성에 반대할 명분이 없다. 인구 10만 명당 치료 가능한 사망자 수는 서울이 40.4명, 충북은 53.6명이다. 제대로 의료서비스를 받으면 살 수 있었던 환자의 수다. 응급, 외상, 분만 등 기피 전공에선 격차가 더 심각하다. 환자가 어디에 사느냐, 어디가 아프냐에 따라 수명이 달라질 수 있단 얘기다. 그래서 의료계는 의료취약지 인프라 개선 없이 의사가 가지 않는다는 논리를 편다. 속내는 공공의대가 의사 공급 확대의 단초가 될까 걱정스러운 것이지만.

지역 간 격차는 의사의 수급 불균형만으로 설명이 안 된다. 의사 총량 부족이 이런 격차를 빨리, 크게 벌어지게 했다.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는 1.89명(한의사 제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56% 수준이다. 그런데 의대 정원은 2007년부터 3058명으로 동결이다. 그동안 의사가 과로사를 하고 지방 병·의원이 사라지고 간호사가 진료보조인력(PA)으로 수술 및 처치를 대신하는 상황까지 왔다.

정부는 공공의대라는 궁여지책을 내놓고는 의대 증원은 언급조차 꺼려한다. 의사 수가 늘면 없던 의료 수요가 창출돼 건보재정에 부담이 될까 봐 우려해서다. 의료계 눈치도 보인다.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건강보험이라는 공공 재원과 병·의원이라는 민간 인프라가 부부가 돼 탄생했다. 낮은 보험료로 설계된 건강보험은 낮은 수가(酬價)로 귀결된다. 정부는 의사 수를 통제해 박리다매를 허용했고 이로써 의료계의 반발을 달래 왔다. 의사 수는 세계 최저인데 국민 1인당 외래진료 횟수(16.6회)는 세계 최고인 비법이 여기 있다. 부부가 국민건강이라는 자식을 낳고 억지로 사는데 괜히 이혼 사유를 만들고 싶지 않다.

이번 국회서 공공의대가 좌초된다면 정부는 의사 정원 확대를 공론화해야 한다. 직역 논리가 국민 건강을 해칠 정도가 됐는데도 방관해선 안 된다. 전문가들은 고령화라는 사회적 요인과 바이오, 인공지능(AI) 등 산업적 요인으로 의사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한다. 의사 양성에는 10년 이상 소요된다. 이미 늦었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원#공공의대#의사 정원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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