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에 사로잡힌 민주당 “나도 친문” 외치는 의원들[광화문에서/길진균]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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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진균 정치부 차장
길진균 정치부 차장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이 6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때 발언으로 혼쭐이 났다. “젊은이의 상처가 걸린 반대쪽으로 제 마음이 기울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며 조 후보자 임명에 부정적인 뜻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발언 직후부터 “자유한국당으로 가라”는 항의 전화가 사무실로 쏟아졌고, 금 의원 개인 휴대전화에는 다음 날 새벽까지 3만 건에 가까운 문자 폭탄이 쏟아졌다.

같은 당 박용진 의원도 최근 방송에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에게 “오버하지 말라”고 했다가 1만 건이 넘는 항의성 문자 폭탄을 받았다. “청년들의 마음을 더욱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인데 일부 친문(친문재인) 지지자들은 ‘배신자’ ‘탈당하라’ 등 거센 항의를 퍼부었다.

금 의원과 박 의원의 경우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요즘 민주당에선 당 지도부 또는 친문 주류와 다른 의견을 내면 “그 입 다물라”는 비판이 당 안팎에서 쏟아진다. 특히 친문 출신이 아닌 경우에는 그 수위가 더욱 높아진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지×한다’ ‘개××’ 같은 욕설과 폭언이 넘치고 일부 극성 지지자들은 가족까지 표적으로 삼는다. 같은 당 일부 의원들은 동료에 대한 고언(苦言)인지, 또는 청와대와 지지층을 향한 구애인지 알 수 없는 톤으로 “○○○ 의원 발언은 잘못됐다. 문재인 정부와 당의 단일대오를 깨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간혹 고심 가득 찬 쓴소리를 내던 중진 의원들은 거의 입을 닫았다. 개인적 의견을 물어도 “난처해. 물어보지 마” 하면서 손을 내젓기만 한다. 친문과 ‘친문이 되고 싶은’ 의원들만 목소리를 높이는 민주당의 지금 모습이다.

민주당은 원래 ‘김대중 노무현 김근태’ 세력의 연합 정당이었다. 세력 연합은 때로 분열의 모습으로 비치기도 했지만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그런데 이 같은 균형은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거치면서 친문 쪽으로 무게추가 확 기울며 깨지기 시작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는 70, 80대가 됐고, 그 명맥을 이은 호남 정치인들이 대부분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등으로 당적을 옮겼다. 김근태 전 의장을 따르던 586들은 친문 지원 세력을 자임하면서 자기 세력화할 기회를 놓치거나 동력을 잃었다. 이제 연합의 흔적은 민주당 공식 행사에서 가끔 들리는 “우리는 김대중 대통령의 남북 화해 정신을 계승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개혁 의지를 이으며, 김근태 의장의 민주주의 정신을 되새기는…” 같은 축하문(祝賀文) 수준의 모두 발언에서나 찾을 수 있게 됐다.

이렇게 구축된 여권의 친문 일극(一極) 체제와 ‘정치 팬덤’의 결합은 전례 없는 수준의 편 가르기로 나타나고 있다. 자기편이면 무슨 죄를 지어도 용서하고, 다른 얘기를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왕따를 시킨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인터넷 댓글에, 최근엔 유튜브 방송들까지 가세했다. 씨줄 날줄로 얽힌 이 그물망에 한번 걸려들면 누구도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는 구조가 됐다. 합리적 이성적 판단을 강조하는 정치인들의 목소리가 잦아들게 된 이유다. 하지만 여당의 정치는 일부 민주당 지지층과 ‘팬덤’만의 영역이 아니다. 독선이 쌓일수록 당내에서 이기고, 당 밖 선거에서 패배할 수 있다는 것이 과거 정권들이 알려준 교훈이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조국 인사청문회#금태섭 의원#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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