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슬로 미디어 운동’을[광화문에서/김유영]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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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스마트폰은 ‘21세기 슬롯머신’이다. 누르기 전엔 뭐가 나올지 모르지만, 일단 누르면 무언가 우르르 쏟아진다. 그게 유명인에 대한 뉴스 혹은 가십일 수도, 지인의 일상일 수도 있다. 확실한 건 한번 누르기 시작하면 멈추기 힘들다는 것. 예측하기 힘든 상황에선 쾌락 물질인 도파민이 더 많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하루 너덧 시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일주일이면 만 하루가 넘는다.

시간에 대한 통제권을 잃은 삶, 괜찮은 걸까. 대개는 스마트폰으로 내용 일부만 훑고 얼른 다음 페이지로 넘어간다. 온갖 정보의 무한 루프 속에서 완결되지 못한 내용이 머릿속을 부유한다. 이는 인지나 정서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 A 과제에서 B 과제로 휙휙 넘어갈 때 주의력이 100% 따라가지 못하고 주의 잔류물(attention residue)이 B 과제를 방해한다. 마치지 못한 일에 대해선 긴장감 등 불편한 감정도 이어진다(제이가르니크 효과·Zeigarnik Effect).

독일에서 주창된 ‘슬로 미디어 운동’을 떠올린다. 미디어를 접하는 대로 즉각 소비하는 것보다 양질의 콘텐츠를 선별해 집중하며 소화시키자는 취지다. 미식의 나라 이탈리아에서 패스트푸드점인 맥도널드에 반기를 들고 몸에 좋은 음식을 엄선해 음미하자며 일어난 슬로 푸드 운동에서 착안했다. 패스트푸드는 만들기도 쉽고 먹기도 쉽고 그만큼 유혹적이지만 몸에 좋지 않다. 자극적인 미디어도 다르지 않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슬로 미디어 운동은 양(量)보다 질(質)을, 빠름보다 느림을 추구한다. 좋은 콘텐츠를 골라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선택해 소비하는 게 핵심이다. 예컨대 주말 아침에 태블릿을 들고 카페에 가서 한 주간 저장해 놓은 기사를 꼼꼼히 읽는 것이다. 조금 늦더라도 정제된 콘텐츠로 새로운 생각을 접하거나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고 영감을 받기도 한다.

몰입에 대한 베스트셀러 ‘딥 워크’를 쓴 칼 뉴포트는 “온라인에 계속 접속해 있으면 정보를 많이 얻는 느낌을 받지만 다음 날 조간 기사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는 경우가 많다. 속보 기사가 아닌 바에야 정보에 대한 노출을 의식적으로 줄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꼭 필요한 것만 선별하고 그렇지 않은 건 버려 최고에 집중하는 ‘디지털 미니멀리즘’을 제안한다.

소셜미디어도 마찬가지다. 해당 분야에 통찰력이 있는 사람을 엄선해 팔로하고, 팔로 수를 던바의 수(Dunbar‘s number·개인이 사회적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숫자)인 150명 이하로 유지한다. 또 스마트폰에서 소셜미디어 앱을 삭제하고 PC로 소셜미디어를 해 스스로의 시간을 통제한다.

집중이야말로 21세기 가장 희소한 자원이 됐다. 세상과 단절되어 살 수 없지만, 우리의 시간은 소중하다. 말과 행동이 다른 어느 장관 후보자의 이력이나 이혼 소송 중인 연예인의 가십, 얼굴 본 지 5년은 족히 넘었을 동창의 일상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느라 우리의 인지 자원과 정서 자원을 허비하기엔 억울하다. 패스트푸드는 가끔 먹으면 맛있지만 주식이 될 수는 없다. 다가오는 주말에는 보다 소중한 것에 시간을 쏟았으면 좋겠다. 죽으면서 “인터넷을 더 했더라면…”이라고 후회하지는 않을 테니.

김유영 디지털뉴스팀 차장 abc@donga.com
#슬로 미디어 운#스마트폰#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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