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성인영화계에서 벌어진 왠지 낯설지 않은 풍경들[광화문에서/정양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정양환 문화부 차장
정양환 문화부 차장
미아 칼리파.

26세 미국 여성. 생소하겠지만 서구에선 꽤 알려진 ‘셀럽’(명사)이다. 인스타그램 팔로어만 약 1700만 명. 한 성인지가 뽑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본 영화’ 주인공이기도 하다. 지난해 이라크에서 발생한 시위에도 그 이름이 등장했다. ‘칼리파가 정치인보다 낫다’는 피켓이 거리에 나섰다. “무능한 그들과 달리, 최소한 위안과 안식을 줬다”나.

그는, 포르노배우다.

칼리파는 2014년 데뷔(?)부터 화제였다. 하긴 스타 탄생이 시간에 구애받던가. 곧장 미 성인사이트에서 인기 순위 정상을 찍었다. 레바논 출신인 그는 특히 중동에서 주목받았다. 하지만 몇 달 동안 10여 편을 찍은 뒤 돌연 은퇴했다. 텍사스대를 나온 그는 스포츠캐스터를 준비한단다.

다시 세간의 관심을 끈 건 지난달. 수많은 언론이 그를 다뤘다. 워싱턴포스트와 가디언, 인디펜던트…. BBC 라디오는 주요 대담 프로에도 초대했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미아 칼리파는 성산업(sex industry)에서 가장 성공한 배우다. 지금까지 그의 영상은 수십억 명이 시청했다. 그런데 받은 돈은 고작 1만2000달러(약 1460만 원)였다.”

누가 봐도 문제긴 하다. 젊은 여성이 그런 일을 감수하고 편당 140만 원쯤이라니. 안타깝고 속상하다. 반면 제작사는 수천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사회적 비난이 폭발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지지와 격려의 물결이 거대한 파도로 번졌다. 칼리파는 여기에 마지막 눈깔을 그려 넣는다. “다시는 저처럼 힘없는 여성 희생자가 나오지 않길 바랍니다.”

과연 그럴까.

실은 이후 분위기는 다소 묘하다. 일단 칼리파가 피해자가 맞느냔 반론이 나왔다. 몇 년 전 직접 계약서를 썼고 강제성도 없었다고 스스로 밝혔다. “지우고 싶은 과거”라더니, 지금도 유명세를 십분 활용한다. 개인 SNS엔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게재물이 넘쳐난다. 그 덕에 SNS로 버는 수익만 1년에 200만 달러가 넘는다.

그가 단박에 인기를 얻은 과정도 짚어보자. 중동계였던 칼리파는 포르노에 ‘히잡’을 쓰고 나온 최초의 배우였다. 또 그걸 저질농담 소재로 삼았다. 자신은 가톨릭 신자면서. 이 노이즈마케팅이 성공의 핵심 비결이었다. 당연히 이슬람 사회는 난리가 났다. 하지만 그는 타인의 종교를 모독한 전력을 사과한 적이 없다. 오히려 SNS에서 가운뎃손가락을 들어올린 사진을 띄웠다. 완벽한 ‘내로남불’이다.

물론 이런 정황이 구질구질한 성산업을 옹호해줄 이유가 되진 않는다. 굳이 따진다면 그쪽이 훨씬 거대 악이니까. 하지만 때론 위선(僞善)에 받는 상처가 더 크다. ‘을 코스프레’에 속아 응원했는데, 속살은 갑이라면 배신감은 그지없다.

게다가 이 소란, 서로에겐 수지맞는 장사였다. 출연 영상은 다시 조회수가 치솟았다. 칼리파는 1400만 명이던 팔로어가 보름 만에 300만 명 남짓 늘었다. 광고 제의도 쏟아졌다. 그동안 진짜 보통사람은? 열심히 쌈짓돈 쓰고 구독자도 올려줬다. 이쪽저쪽 편 가르고 혈압만 올려댔다. 그렇게 을과 을이 피 터질 때 갑과 갑은 짭짤했다. 제정신 차리지 않는 한, 세상은 언제나 이 모양이다.
 
정양환 문화부 차장 ray@donga.com
#미아 칼리파#셀럽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