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길 조심” 협박 받고도… 시민에게 계곡 돌려준 시장[광화문에서/김재영]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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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사회부 차장
김재영 사회부 차장
해마다 여름이면 많은 사람이 계곡을 찾는다. 얼음장 같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얼굴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면 천국이 따로 없다. 하지만 흥취를 깨는 장면도 많다. 돗자리를 펼칠 만한 자리는 이미 상인들이 불법으로 평상을 설치해 찜을 해두고 자릿세를 요구한다. 2인 기준 7만∼8만 원짜리 닭백숙을 시켜야 한다. 정성껏 준비해 온 도시락은 뚜껑도 못 열고 울며 겨자 먹기로 닭다리를 뜯는다.

올여름 수락산계곡 등 경기 남양주시의 계곡에선 이 같은 불법행위가 싹 사라졌다. 평상, 천막, 보 등의 불법 시설물이 걷히고 계곡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상인들에게 빼앗겼던 하천과 계곡이 시민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조광한 남양주시장이 1년간 집요하게 추진해 온 ‘계곡 탈환 작전’ 덕분이다.

지난해 7월 취임한 조 시장은 취임 직후부터 시민들에게 하천을 돌려주겠다고 강조했다. 수십 년간 계속된 불법의 고리를 끊겠다고 했다. 조 시장은 “시장이 떠들어봐야 현장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소용없다”며 “공무원들의 공감을 얻고 설득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업주들에겐 지난해 여름부터 “올해까진 눈감아준다. 내년부턴 장사 못 한다”고 거듭 공지했다. 가을부턴 주민, 업주 등을 상대로 16차례나 토론회와 설명회를 가졌다. 설명하고 설득하고 연말까지 자진 철거해 달라고 사정했다. 조 시장은 “업주들도 주민인데 일회성 소탕작전처럼 밀어붙여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지역에선 한 다리 건너면 모두 형, 동생이다. 업주 중엔 지방선거에서 발 벗고 조 시장을 도왔던 지인도 있었다. “방검복 입고 다녀라” “밤길 조심해라” “표 떨어지는 소리 안 들리냐” 등의 협박도 받았다. 혹시 직원들이 다칠까 경찰에 협조 요청까지 해야 했다.

반년이 지나니 업주들도 이번엔 다르다는 걸 느끼는 눈치였다. 여름철 반짝 단속한 적은 많았지만 겨울까지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건 처음이었다. 많은 업주가 자진 철거를 했고, 거부하는 업주를 대상으로 올해 3월부터 강제 철거에 들어갔다. 지난달 초까지 4개 하천·계곡에 82개 업소가 설치한 불법 시설물 1105개와 2260t의 폐기물을 철거했다.

남양주시의 성공에 자극받은 경기도도 역시 팔을 걷었다. 경기도 특별사법경찰단은 검찰에 요청해 지난해 11월 하천법 관련 수사를 특사경 직무로 이관받았다. 특사경은 지난달 도내 주요 계곡 16곳을 대상으로 불법행위를 수사해 74건을 적발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12일 “하천불법점유 영업행위가 내년 여름에는 도내에 한 곳도 없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성공했다고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 대대적인 단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영업을 재개하는 일이 수십 년 동안 반복됐기 때문이다. 조 시장은 “계속 대화하고 설득하며 관리 감독해야 한다”며 “접근하기 쉬운 곳은 공원으로 조성하는 등 후속 조치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초 수락산계곡을 찾았다는 지인은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처럼 속이 시원하다”고 했다. 거창한 정책이나 대단한 뉴스는 아니지만 주민에게 웃음과 감동을 준 진짜 민생정치다.
 
김재영 사회부 차장 redfoot@donga.com
#남양주#계곡#하천불법점유#민생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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