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갈이 향한 이해찬 잰걸음 세대교체 혹은 親文 공천[광화문에서/길진균]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길진균 정치부 차장
길진균 정치부 차장
“결국 인적쇄신, 세대교체밖에 더 있겠어? YS도 그랬고….”

2020년 치러질 21대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안에서 1996년 15대 총선을 거론하는 인사들이 늘고 있다.

우선 대통령 집권 4년 차에 선거가 치러진다는 점이 같다. 무엇보다 총선을 관통하는 이슈가 비슷하다. 역사 바로 세우기를 앞세웠던 김영삼(YS) 정부는 집권 후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했다. 하지만 집권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개혁의 피로감이 만연했다. 여권에 위기감이 팽배했다.

다른 점도 있다. 1996년엔 YS라는 승부사가 있었다. 총선 1년 전부터 진영과 계파를 떠나 이길 수 있는 인물을 샅샅이 뒤진 YS는 민중당 출신 이재오 김문수 등을 공천했다. 자신에게 각을 세운 이회창을 영입해 당의 간판인 선거대책위원회 의장으로 내세웠다. 새 인물과 세대교체로 ‘정권심판론’을 돌파했고, 수도권 압승으로 원내 1당을 지켰다.

민주당에선 당시 신한국당 공천을 ‘롤 모델’ 삼아 비상한 각오로 공천에 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 그렇다고 여권이 손을 놓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현 여권의 공천 작업은 이해찬 대표가 주도하고 있다. 각종 이슈에 가려 주목을 덜 받고 있지만 그는 올 초부터 물갈이 공천을 위한 사전 포석을 차곡차곡 진행했다. 최근엔 ‘당 대표 중심 공천’을 위한 기반을 사실상 완성했다.

1일 민주당 중앙위를 통과한 새 공천 룰은 현역 의원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신인의 정치 참여를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상향식’을 강조해 당 대표의 전략공천도 최소화했다. 하지만 뜯어보면 당 대표의 권한이 더욱 강화된 측면이 있다. 현역 감점과 신인 가점이 동시에 적용되면 경쟁 후보 간 출발점이 최대 45%까지 벌어질 수 있다. 공천심사위원회가 가점과 감점 폭을 결정하지만 그 내용은 공개 대상도 아니다. 이 대표는 “공심위가 객관적으로 평가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공심위는 이 대표가 주도적으로 꾸린다. 이 대표는 또 당 전략기획위원장에 이례적으로 자신과 가까운 원외 여론조사 전문가를 임명했다. 당 공심위에 후보 경쟁력 여론조사 데이터를 제출하는 핵심 당직이다. 중립 성향의 현역 의원이 맡던 자리다.

여기에 이 대표는 얼마 전 인재영입위원장까지 직접 맡기로 했다. 한 중진 의원은 “예전엔 계파 안배 시늉이라도 냈는데 이번엔 영입과 퇴출을 위한 당내 기구와 절차를 이 대표가 모두 장악했다”며 “이미 불출마 의사를 밝힌 이 대표가 ‘양보론’을 펴는 순간 여러 중진이 급속도로 퇴진론에 휩싸일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의 물갈이는 이미 현실화된 미래다. 중요한 것은 그 방향이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집권 4년 차를 맞은 박근혜 전 대통령도 대대적 물갈이에 나섰다. 야권 분열이라는 정치적 환경 속에 180석 이상을 목표로 잡았던 새누리당은 ‘진박 공천’ 논란 속에 스스로 무너졌다. 이미 40명 안팎의 문재인 청와대 출신 참모들이 내년 총선 출사표를 던진 상황이다. 이 대표가 국민이 원하는 새 인물 영입으로 진정한 세대교체를 이끌지, 또 한 번의 ‘친문 공천’에 머무를지 지켜볼 일이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21대 총선#이해찬#더불어민주당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