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 사라진 공사현장 이중삼중 감시체계 갖춰야[광화문에서/김재영]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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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사회부 차장
김재영 사회부 차장
지난 주말 아이와 길을 걷던 한 어머니는 ‘위험하다’며 연신 잔소리를 했다. 가림막이 세워진 공사장 앞에선 아이 손을 낚아채고 허리를 살짝 숙인 채 종종걸음으로 지나갔다.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았던 4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 철거 건물 붕괴 사고의 충격은 컸다.

서류상으론 흠잡을 데 없었다. 건축주가 제출한 해체공사계획서 등을 전문가로 구성된 심의위원회가 꼼꼼히 따졌다. 지적 사항을 보완한 이행계획서를 다시 심의했다. 2년 전 서울 종로구 낙원동 공사 현장 붕괴 사고 이후 도입된 ‘사전 철거심의제도’에 따른 것이다. 위원회는 공사 허가의 첫 번째 조건으로 현장에 상주하는 감리자를 두라고 건축주에게 권고했다.

현장은 서류와 달랐다. 철거 전 반드시 설치해야 할 잭서포트(지지대)는 하나도 없었다. 파수꾼 역할을 해야 할 감리자는 아예 현장에 없었다. 감리자는 상주 가능성이 의심스러운 87세의 고령이었지만 누구도 공사 허가 조건을 제대로 이행할지를 따지지 않았다. 구청은 현장을 한 번도 점검하지 않았다. 공사 현장은 말 그대로 심판 없는 경기장, 감독 없는 시험장이었던 셈이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올 4월 강원 원주기업도시 철근 추락 사고 등 각종 사고 때마다 현장을 비운 감리자가 도마에 올랐다. “사무실에 보고하러 잠시 자리를 비웠다” “급한 일이 있어 대리인을 보냈다”는 게 주된 핑계였다. 건축사 자격증을 대여해 주는 관행도 여전하다. 한 건축사는 “은퇴한 건축사들 중에 감리 자격증을 빌려주고 용돈벌이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감리자들도 할 말은 있다. 공사 현장에서 허수아비 취급을 받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시간이 돈인 시공사와 철거업체들은 공사를 서두른다. 위험한 상황이라면 감리자가 공사 중지와 재시공을 명령할 수 있지만 이 권한을 행사하는 일은 거의 없다. 감리비를 주는 건축주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전문가들은 감리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동시에 권한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방자치단체도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감리자가 알아서 하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방관해선 안 된다. 심판이 잘하는지 감시할 필요가 있다. 사고만 터지면 지자체에서 일제 점검에 나서지만 서류 확인, 육안 점검 등 형식적인 수준에 그친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전직 서울시 고위 공무원은 “민간 감리에만 책임을 미루고 현장을 직접 챙기지 않다 보니 설계나 건축 구조 등을 이해하는 데 공무원들의 역량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건축 행정의 현장성과 전문성을 높여야 건축 현장을 제대로 관리 감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소는 잃었지만 이제라도 외양간을 제대로 고치자”는 말이 많이 나온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높고 튼튼하게 울타리를 쳐도 문이 활짝 열려 있으면 소용없다. 땜질식 제도 개선만으론 부족하다. 현장의 철저한 안전 의식, 이중 삼중의 건축 행정이 맞물려야 한다. 건축주, 시공사, 감리자, 지자체 등 모두가 빈틈이 없어야 사고를 막을 수 있다.

김재영 사회부 차장 redfoot@donga.com
#건물 붕괴 사고#잭서포트#감리자#공사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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