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형준]‘레이더 가동’ 진실게임… 日은 왜 초강수를 두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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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국제부 차장
박형준 국제부 차장
“예측하지 못한 사태를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행위다. 일방적인 도발이며 매우 유감스럽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추적 레이더 조사(照射)와 관련해 한 말이다. 다만 최근의 언급은 아니다. 시점은 2013년 2월 6일. 대상은 중국이다. 일본 정부는 2013년 1월 ‘중국 감시선이 일본 헬리콥터와 호위함에 대해 각각 추적 레이더를 가동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중국 정부는 ‘추적 레이더를 비춘 적 없다’고 반발했지만 총리까지 나서 중국에 항의했다.

현재 한국과 일본이 벌이고 있는 ‘레이더 가동’ 진실게임과 판박이다. 하지만 흔히 일어나는 일로 넘겨버리기엔 석연치 않은 대목이 있다.

2013년 초 일본과 중국은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영유권을 놓고 극심하게 대립했다. 중국은 센카쿠 인근으로 군함을 보냈고, 일본은 해상자위대 파견으로 맞섰다. 중국 해양감시선과 일본 순시선도 대치하면서 군경이 모두 동원된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도 펼쳐졌다. 그런 민감한 시기에 추적 레이더 가동 이슈가 터졌고, 아베 총리가 유감을 나타낸 것이다.

당시 중일 간 대치 국면은 마치 전쟁이 날 듯이 법석대는 수준이었다. 현재 한일 관계가 악화됐다고는 하지만 그처럼 군사적 긴장 관계를 느낄 정도는 아니다.

일본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전략적 가치도 다르다. 지난해 개정된 방위대강에서 일본은 가장 큰 군사적 위협국으로 중국을 꼽았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우방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와 정치인들은 ‘한국 해군 구축함이 일본 초계기에 추적 레이더를 가동했다.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라’고 연일 정치적 메시지를 보내고, 유튜브를 통한 국제 여론전까지 벌이고 있다. 한국 국방부도 일본 측 위협을 강조하며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일본이 우방인 한국에 날을 세우는 이유는 뭘까. 일본 언론이 분석하는 대로 위안부 문제, 화해·치유재단의 해산, 강제징용 판결 등으로 아베 총리의 심기가 불편했는데, 레이더 문제까지 더해지자 아베 총리가 한국에 대해 폭발한 것일 수 있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빠르게 부상하고,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을 보내면서 한일 간 경제 격차가 줄어들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한일 청구권협정을 맺은 1965년 한일 간 국내총생산(GDP) 격차는 1 대 100이었지만, 요즘은 1 대 2.5 수준으로 줄었다. 과거 일본은 한국에 비교적 너그러웠지만, 지금은 조바심을 내고 있다.

또 하나. 한국에 대한 부채의식이 옅어졌다. 과거 일본은 외교적으로 한국과 부딪치더라도 결국엔 한발 물러섰다. 강제병합, 위안부 문제 등이 일본인 마음속에 부채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다르다. 2015년 말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한다’고 한국 정부와 합의하면서 족쇄 하나를 풀었다. 한국 정부는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해결됐다’고 밝혔지만, 한국 대법원의 반대 판결 이후 지한파 일본 지식인들도 한국과 담을 쌓기 시작했다.

부채의식을 지워버린 일본. 이제 앞으로 국제사회의 첨예한 이슈에서 한국에 대한 공세의 칼날을 더 날카롭게 세울 것 같다. 하지만 방패 역할을 할 국내 인사를 찾는 게 쉽지 않다. 한일 관계를 개선하고자 뛰어다녔던 외교부 공무원과 청와대 인사들은 박근혜 정부 시절의 과오와 함께 사라졌다. 공무원들까지도 정권이 바뀌면 ‘찍히는’ 현실. 과연 누가 소신 있게 방패 역할을 할 수 있겠나.
 
박형준 국제부 차장 lovesong@donga.com
#아베#추적 레이더 조사#레이더 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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