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동정민]프랑스 노조의 굴욕… 20대의 가입률 3.6%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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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민 파리 특파원
동정민 파리 특파원
3.6%.

지난달 프랑스 통계청에서 발표한 프랑스 노조의 20대 가입률은 충격적이었다. 20대 직장인 100명 중 고작 서너 명만이 노조에 가입했다는 뜻이다. 노조의 천국이라고 불리던 프랑스에서 어쩌다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1990년대 인기를 끈 베스트셀러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서 홍세화 씨(현 장발장은행장)는 프랑스 노조의 지하철 파업 당시 시민들의 반응을 이렇게 ‘낭만적으로’ 소개했다.

“이용자가 불편을 겪는다고 지하철 노동자의 파업권을 제한하는 데 동의하면 언젠가 그 제한의 목소리가 바로 우리에게도 닥칠 것이라고 여긴다.”

그때도 프랑스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률은 10% 수준에 불과했다. 그래도 당시에는 약자인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노조를 국민이 지켜줘야 하며, 노조는 사회 개혁의 주축 세력이라는 신뢰가 있었다.

이젠 다 옛날 얘기다. 당시 모였다 하면 수십만 명 수준이던 노조의 반정부 시위는 이제 1만∼2만 명 모으기도 힘들다. 프랑스 최고 강성 노조인 노동총동맹(CGT)의 필리프 마르티네즈 위원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사람 모으기가 정말 쉽지 않은 일이 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달 들어 프랑스 전역이 들썩이고 있는 ‘노란 조끼’ 시위의 시작은 노조가 아니라 한 여성의 페이스북 동영상이었다. 정부의 유류세 인상에 분노를 표시하는 40대 여성의 영상은 조회수 600만을 기록하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 퍼져나갔고 자발적으로 전국에서 30만 명이 모였다. 좌우 이념 없이 생계형으로 뭉친 이들은 오히려 강성 노조와 거리를 뒀다.

노조의 조직력보다 SNS의 조직력이 더 센 시대의 변화 탓도 크지만 가장 근본적인 건 노조에 대한 국민의 신뢰 상실이다.

2012년 좌파 올랑드 정권 이후 노조는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시장 유연화와 과도한 공무원 복지 축소 개혁을 막기 위해 수차례 총파업으로 맞섰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저지하지 못했다. 국민이 노조의 총파업보다 정부의 개혁 방향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노조가 정부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국민 생활을 볼모로 반정부 시위만 일삼다 보니 국민의 외면은 더 심화됐다.

‘불패 신화’를 자랑하던 철도 노조가 대표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철도 노조원 800명이 나치에 총살을 당하며 레지스탕스의 산실 역할을 한 이후, 철도 노조는 하나의 성역(聖域)이었다. 그 성벽(城壁) 안에서 철도 노조는 평생 고용이 보장되는 것을 넘어 정년보다 10년 먼저 은퇴해도 곧바로 연금을 받는 특별 혜택을 누리게 됐다. 올해 들어 마크롱 정부가 이 혜택을 축소하려 하자 노조는 총파업에 나섰다. 그러나 정부의 개혁안은 국민 60% 이상의 지지를 얻었고, 곧바로 국회에서도 통과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럽에선 정권을 잡아 온 엘리트 기성 정당과 그 정당에 반대만 해온 노조가 동시에 무너지고 있다. 이유는 같다. 내 삶보다 제 잇속만 차리려 한다는 국민의 불신 탓이다. 노조원과 국민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지혜를 모으지 못한 채 힘자랑만 하던 강성 노조의 시대는 전 세계적으로 저물고 있다.

11일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 조사에서 “노조가 ‘사회 개혁’에 도움이 된다”는 응답은 42%였다. 요즘 폭력적이고 일방통행이라는 비판을 받는 한국의 강성 노조에 대해 같은 질문을 던지면 국민의 대답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프랑스보다 높을 것 같지 않다.
 
동정민 파리 특파원 ditto@donga.com
#프랑스 노조#반정부 시위#노동시장 유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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