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고미석]국립현대미술관, 우리 곁으로 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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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 논설위원
고미석 논설위원
불문학계 원로이자 문학평론가인 김화영 씨는 책방 나들이를 아이가 사탕가게에 가는 일에 빗대어 말한다. 알록달록한 사탕들을 보는 순간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인터넷 서점 대신 굳이 서점을 찾는 이유도 이 책 저 책 들춰 보면서 생각하지도 못한 책을 발견해 한 아름 사들고 오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란다. 듣고 보니 책에 관한 한 ‘충동구매’든 ‘경로이탈’이든 긍정적 측면이 많기에, 오며가며 들를 만한 책방이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는 것은 참 아쉬운 일이다.

서점만이 아니라 공공 문화시설은 누구나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접근성이 좋아야 한다. 농부의 걸음 소리를 듣고 곡식이 자라는 것처럼 문화예술도 대중의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큰다.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미국 뉴욕의 5번가에도 메트로폴리탄미술관, 구겐하임, 노이에 갤러리 등이 오밀조밀 몰려 있다. ‘뮤지엄 마일(Museum mile)’이라 불리는 이곳은 뉴욕의 자부심이자 시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열린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미술관과 공연장이 한 울타리에 자리한 오스트리아 빈의 ‘뮤지엄 쿼터’나 일본 도쿄의 우에노 공원도 도심에 있다. 굳이 전시와 공연을 보지 않아도 독서와 산책 등 여유로운 일상에 윤기를 더해주는 도심 속 휴식공간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대한민국 수도의 한복판에도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는 문화공간이 생겼다. 경복궁과 이웃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사업비 2460억 원, 4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오늘 문을 여는 것이다. 서울관은 미술계 숙원사업이었다. 한적한 산자락에 자리 잡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어쩌다 큰 맘 먹고 온 미술애호가나 학생들이 주요 관람객이다. ‘놀이공원 옆 미술관’이란 입지 때문에 봄가을 행락철엔 전시 보러 갔다 꽉 막힌 도로 때문에 포기하고 돌아오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한국 미술의 새 요람으로 탄생한 서울관의 주소는 서울 종로구 삼청로 30번지. 조선시대 왕가 업무를 맡은 종친부가 있었던 곳이자, 일제강점기 경성의전부속병원이 들어선 곳이다. 국군서울지구병원과 국군기무사령부도 한때 이곳에 터를 잡았다. 그런 노른자위 땅이 마침내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 땅의 굴곡진 사연을 반영하듯 2009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조성계획을 발표한 뒤 개관까지 문화재 발굴과 병원 이전 문제, 공사 중 화재까지 많은 고비를 넘겨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종친부 한옥, 근대기 벽돌건물, 현대적 전시장이 공존하는 모양새로 태어난 서울관은 건물만으로도 자신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우리의 미술이 국제적으로 도약하는 디딤돌이 되어줄 서울관은 풍성한 개관기념전을 준비하고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마르셀 뒤샹이 남자 소변기를 작품으로 당당하게 내놓은 뒤 현대미술은 ‘미(美)’보다 ‘사유’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그래서 난해하다 말하지만 명민한 작가들은 작품해석을 철저히 관객의 몫으로 남겨둔다. 정답은 없으니 각자 자기 식대로 받아들이면 된다는 의미다.

전시 아니라도 서울관을 즐길 방법은 많다. 미술관 안팎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수려한 경관은 예술작품 버금가는 아우라를 발휘한다. 문턱 낮춘 서울관은 연면적의 약 3분의 1을 편의시설에 할애했다. 대중의 일상 속으로 파고들기 위해서다.

서울관의 과제는 세계 문화지도에 한국을 확실히 각인시키는 것과 많은 사람이 함께 보고 즐길 수 있도록 시민 참여를 이끌어내는 일이다. 역사와 전통, 자연과 예술이 살아 숨쉬는 공간, 문화와 휴식이 있는 공간으로 진화해야 한다. 그것이 문화계가 국민에게 받은 선물을 국민에게 다시 되돌려주는 길이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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