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과 中企부터 살려야 한다[동아광장/하준경]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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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터진 금융위기 확산… 2008년 美 서브프라임 사태 연상
中企 등 무너지면 금융회사로 전파… 긴급자금 대출-공공일자리 공급하고
해외로의 급속한 자금 이탈 막아야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19세기 유럽에선 태양흑점 변화 주기, 즉 11년마다 불황이 온다는 믿음이 있었다. 금융위기도 비슷한 주기로 반복됐다. 흑점이 위기를 불러올 리 없지만 많은 사람이 곧 위기가 온다고 믿으면 경제활동이 위축돼 실제로 위기가 발생하곤 했다.

금융 시스템이 취약하면 흑점이 아닌 그 어떤 충격도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는 위기의 기폭제(trigger)와 취약성(vulnerability)을 정확히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집값 하락과 서브프라임(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손실은 기폭제였고, 실제 위기는 금융 시스템에 내재된 취약성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위기 전엔 많은 이들이 서브프라임은 규모가 작으니 영향도 제한적일 것이라고 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사람들은 기폭제의 크기만 보고 시스템의 취약성은 간과했다. 바짝 마른 들판에선 작은 불똥도 큰불을 일으킨다.

당시 미국 금융 시스템의 취약성은, 민간이 마구 빚을 내 위험자산에 투자하는데도 금융기관과 규제당국 모두 그 위험도를 정확히 평가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단기부채, 파생금융상품, 규제받지 않는 불투명한 금융회사들이 서로 얽혀 위기의 전염 경로를 차단하는 것도 어려웠다. 지금 코로나19 사태로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것은, 기폭제가 국지적 위기나 소문 수준을 넘어 전 세계 실물경제 곳곳에서 터지고 있고, 그동안 늘어난 위험투자로 금융 시스템이 취약해졌을 수 있으며, 당국의 대응 여력도 불충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진정시킨다 해도 불확실성은 크다.

그럼 금융위기를 예방하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하나. 기폭제의 폭발력을 약화·격리시키면서 동시에 시스템의 취약성을 찾아 고쳐야 한다. 시스템을 보전하는 것이 급선무이고 소비 진작은 그 다음이다.

우선 위기의 기폭제가 될 수 있는 부문, 즉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이 흑자 도산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평소라면 문제없었을 업체가 당장 현금 유동성이 없어 망하거나 직원을 내보내면 이들이 쓴 주택담보대출 등이 부실화돼 금융회사로 위기가 전이된다. 지원 방식은 의사결정의 시급성이나 규모의 충분성을 감안하면 대출이 가장 효과적이다. 선별 및 전달 체계는 한국식 코로나19 검사를 준용하자. 원하는 이들에겐 먼저 검사를 해주고 음성이면 돈을 받지만 양성이면 무료로 해주듯, 일단 업종 지역 등 큰 테두리 안에서 원하면 바로 긴급자금을 쓸 수 있게 해주되 추후 평가 결과 코로나19 피해 업체면 정책금융으로 이자를 감면해 주고 아니면 시장금리를 부과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지원 대상 선별이 쉽고 서류작업 때문에 골든타임을 놓치는 일도 막을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선 원금 일부 탕감도 가능할 것이다. 정부 재정·보증, 한국은행 금융중개지원 대출을 활용할 수 있다.

또 일용직 노동자 등 생계비 지원이 시급한 이들에겐 공공일자리를 대규모로 제공해 소득을 만들어줄 수 있다. 방역 및 마스크 공급 지원, 급식 및 마스크 배달, 맞춤형 비대면 학습 지원, 돌봄 등의 일을 생각해볼 수 있다. 긴급자금이 필요한 이들부터 일하려고 할 것이니 지원 대상 선별이 쉽다.

금융 시스템이 취약해지는 것을 막으려면 주택담보대출 규제 사각지대부터 없애야 한다.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도 서민들에게 1억∼2억 원짜리 집을 사게 해주다가 생겨난 것임을 잊어선 안 된다. 작금의 집값 ‘풍선효과’는 위험자산을 안전자산으로 인식한 투자자들이 과도하게 개입돼 있음을 시사하는 만큼 한국판 서브프라임이 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아울러 수출이 원활하지 않게 돼 외화 유동성 문제가 생길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불안한 상황에선 무엇보다 돈이 잘 돌고 필요한 곳으로 흐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외국 돈이든 한국 돈이든 돈이 급속히 해외로 빠져나가면(external drain) 위험하다. 돈이 금고 속 유동성 함정으로 숨어들면(internal drain) 정책효과는 없어지고 경제는 늪에 빠진다. 통화정책도 이 두 가능성을 막는 것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마스크를 아무리 싸게 공급해도 외국으로 빠져나가거나 장롱 속에 숨어버리면 소용없듯 돈도 꼭 필요한 곳에 가게 해야 한다.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금융위기#긴급자금 대출#공공일자리#자금 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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