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고통을 더하는 사회[동아광장/박상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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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늘고 기업파산 급증한 2000년대 일본
TV 드라마서 갈등 혐오 커진 현실 한탄
2020년 한국, 각종 갈등 늘며 일본 닮아가
청년주택, 트랜스젠더 입학 문제로 대립
타인 배려하는 공동체 지혜 모아야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일본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일본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도쿠가와 이에미쓰는 에도막부의 3대 쇼군이다. 할아버지 이에야스와 아버지 히데타다가 숙적인 도요토미 가문을 멸문시킨 후 쇼군이 되었기에 거칠 것이 없는 전제군주였지만 후사가 없다는 것이 큰 골칫거리였다.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는 쇼군 때문에 속을 끓이던 그의 유모는 이에미쓰가 한 여승에게 관심을 보이자 그녀를 겁박하여 쇼군의 측실로 들였다.

여승이 환속하여 쇼군의 측실이 된 것은 일본 역사에서 그녀가 유일했기 때문에 그녀는 여러 소설과 드라마의 소재가 되었다. 2004년 후지TV에서 방영한 ‘오오쿠’라는 드라마에서는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쇼군가에서도 끝까지 불가의 자비심을 잃지 않은 선한 인간으로 등장한다. 하루는 후사를 둘러싼 측실 간의 암투로 소란이 일자 그녀는 다른 측실들에게 다음과 같이 한탄한다. “우리는 모두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삶 자체가 힘겨운데 우리는 왜 서로서로 고통에 고통을 더하는가?”

내게는 여승의 한탄이 작가의 한탄으로 들렸다. 작가는 아마도 일본인들의 한탄을 듣고 그 대사를 썼을 것이다. 2000년대 초반은 일본인들에게 고통스러운 시기였다. 버블이 붕괴된 것은 1990년대 초반이지만 부자는 망해도 삼대는 간다는 말처럼 파산 기업이 쏟아져 나온 것은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였다. 난공불락처럼 여겨졌던 전자왕국이 한국 기업의 추격으로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고, 일본의 기업가들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해 초조해하고 있었다.

범죄율은 2002년에, 자살률은 2003년에 역대 최고치에 이르렀고, 출산율은 2005년에 역대 최저치를 나타냈다. 세대 간 갈등, 이지메, 외국인 혐오, 증오범죄가 연일 신문의 1면을 장식하던 시대에 ‘오오쿠’의 작가는 여승의 입을 빌려 일본인들에게 묻고 있었다. 이 힘든 시기에 우리는 왜 서로서로 고통에 고통을 더하는가?

2000년대 초반 일본의 풍경을 안타깝게도 나는 2020년 대한민국에서 다시 본다. 최근 한국의 자살률은 2003년 일본의 자살률과 거의 같은 수준이고, 출산율은 일본의 역대 최저치보다도 낮다. 한국의 주력산업은 중국 기업의 맹렬한 추격을 받고 있고, 자녀 세대의 삶이 부모 세대의 삶보다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사회 전체에 팽배하다. 이런 때일수록 공동체에 대한 배려가 절실한데, 우리는 오히려 더 각박해지고 있다.

대학이 짓는 기숙사는 걸핏하면 지역 주민의 반대에 부딪혀 착공이 지연되곤 한다. 대학 인근의 임대료가 낮아질 것을 염려하여 기숙사 건립을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그런 식의 집단행동에 대학도 지자체도 속수무책인 나라가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최근에는 청년주택의 건립 역시 인근 주민의 반대에 부딪혀 완공이 지연되거나, 아예 삽도 뜨지 못하는 곳이 있다고 한다. 청년을 위한 주거시설이나 창업지원시설의 건립을 방해하는 것은 부동산 가격의 폭등이나 취업난 등으로 인해 그렇잖아도 고통스러운 청년의 삶에 고통을 더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는 결국 기성세대의 삶도 고통스럽게 할 것이다. 청년의 삶이 개선되지 않으면 청년이 납부하는 연금과 세금에 기대야 하는 기성세대의 노후 역시 안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서울의 한 여대에서 일부 학생들이 트랜스젠더 여성의 입학을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는 뉴스 역시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그 여성이 지금까지 겪었을 고통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을 텐데, 왜 굳이 고통에 고통을 더하는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 등장하는 옥희의 어머니는 옥희가 ‘화냥년의 딸’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 두려워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다. 여성의 재혼이 혐오되던 시절에 그런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여성 인재를 키우기 위해 설립된 대학에서 성적 소수자가 차별과 혐오를 겪는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사실 지금의 대한민국은 걱정하는 것만큼 미래가 비관적이지만은 않다. 무엇보다 청년인재가 풍부하고, 기업들은 서서히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 과도기를 잘 넘기기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배려, 공동체에 대한 배려가 절실하다. 서로서로 고통에 고통을 더하는 사회로 전락하지 않도록 공동체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일본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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