先주민 속에 移주민이 있소[동아광장/김석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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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한국서 100명 넘는 외국인 노동자 산재 사망하지만 그 사실조차 몰라
다문화 자녀 부적응 - 작업장 폭력 만연… 경제 논리로 접근한 탓
현 정부 철저한 외면과 무관심 일관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10일은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석탄 운반용 컨베이어를 점검하다가 숨진 김용균 씨의 1주기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원·하청 구조를 통한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공분을 자아냈지만 변한 것은 없다. 사실 한국에서 위험의 외주화가 처음 이루어진 것은 3D(Dirty, Dangerous, Difficult) 업종에서의 외국 인력 도입이다. 이들은 지난 30여 년 동안 하청 노동자조차 꺼리는 위험한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일하고 있다. 조류인플루엔자나 아프리카돼지열병 살처분 현장에서도 궂은일은 외국인 노동자의 몫이다. 지난주에도 경기 평택의 한 공장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700t 무게의 프레스기에 깔려 사망했다. 매년 100명 이상의 외국인 노동자가 산재로 죽지만 우리는 그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국내 인구구조의 변화와 세계적 인구 이동의 영향으로 외국인이 증가하면서 우리도 그들을 과거보다 익숙하게 바라본다. 그러나 한국의 이주민(移住民)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대개 결혼이주여성이나 해외 국적 동포를 떠올린다. 이에 반해 외국인 노동자는 단기간 일하고 본국으로 돌아간다는 인식 때문에 일하다 다치고 죽어도 최소한의 관심조차 받지 못한다. 이미 한국 경제는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동티모르 등 저발전 국가 출신의 저임금 노동력 없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외국인 체류자 약 250만 명 중 단기 체류, 사증 면제, 단순 통과를 제외한 200만여 명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 고용허가제와 방문취업제로 입국한 50만 명이 넘는 노동자와 정부의 관리 밖에 있는 40만여 명의 미등록(또는 불법) 체류자도 있다. 이들 대부분은 계속 머무르길 원한다. 잠깐 일하다가 떠날 사람들이 아니다.

외국인의 정주화 경향이 강화되고 있음을 고려하면 이주민은 선주민(先住民)인 우리의 생활세계에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증가하는 이주민의 문제는 ‘인력 관리’와 같은 경제적 논리로만 접근하면 심각한 사회문화적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인권 침해, 다문화가정 자녀의 부적응,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작업장 내 차별과 폭력, 미등록 불법 체류자의 증가, 일상 영역에서 선주민과의 갈등 등 사례는 수없이 많다. 현실을 모를 리 없는 정부는 저임금·저숙련 인력은 잠깐 활용한 후 출국시키고, 한국에서 오래 살 고급 인력을 유치한다는 정책 기조인 ‘외국인 정책 기본계획’을 처음 수립한 10여 년 전부터 유지해 오고 있다. 정작 해외 고급 인력은 한국으로의 이주에 관심이 없다. 정부의 정책이 이주 정책이 아닌 외국인 정책으로 불리는 이유다.

국민은 어떤가? 외국 인력이 한국 경제에 기여하고 노동력이 부족한 직종을 채워주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이주민 증가는 선주민의 일자리를 빼앗거나 한국의 고유 문화를 침해하고 사회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며 싫어한다. 1970년대 독일 탄광에서 생명을 담보로 일했던 우리 아버지들의 고초를 그린 영화에는 눈물 흘리면서 한국 경제의 막장에서 위태롭게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삶에는 공감하지 못한다. 외국인 노동력의 직접적 혜택을 받는 한국인 고용주들은 대만과 싱가포르에서조차 시행 중인, 외국 인력 도입으로 발생하는 비용을 분담하는 제도에 극렬히 반대한다. 시인 이상이 ‘거울’이라는 시에서 표현한 자의식의 집합적 분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2연)//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만/또꽤닮았소/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6연)’

일본은 아시아에서 이주민 정책에 관해서라면 가장 후진적이고 폐쇄적인 국가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아베 신조 정부조차 최근 현실을 인정하고 이민 국가로 전환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이후 이주민 관련 정책 하나 내놓지 않고 철저한 무관심과 외면으로 일관하고 있다. 신남방외교를 표방하며 사증 면제를 통해 불법 체류자를 두 배 가까이 늘려 놓았을 뿐이다. 이주 사회에 대한 무지가 낳은 결과다. 더 서글픈 사실은 이주민 정책의 부재를 비판해도 책임을 느낄 관료나 정치인이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경제 논리 중심의 외국인 정책과 체계적인 이민 정책 전담기구의 부재 때문에 벌어지는 비극이다. 확실히 문재인 정부가 계승하는 촛불정신에 이주민은 존재하지 않는다.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이주민#산재#노동자#문재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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