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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간 기술격차[동아광장/하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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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간 기술격차[동아광장/하준경]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입력 2019-08-05 03:00수정 2019-08-05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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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선진문물 수입 모방하던 일본, 6·25 특수 후 美와의 소득 격차 줄여
韓도 소득 수준 日 턱밑까지 왔지만 경제의 실력인 기술 없인 사상누각
핵심 소재 부품 국산화에 적극 투자하고
기술 선도국과의 협력 강화해 나가야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일본인들은 행복한 종족(race)이다. 작은 것에 만족하니 많은 것을 성취하긴 어려울 것이다.”

“일본 노동자들을 보면 쉽게 만족하는 게으른 종족이라고 느끼게 된다. 시간개념이 없다. 경영자들과 얘기해보면 이 나라의 전통 관습을 바꾸기란 불가능하다고들 한다.”

미국 경제사학자 데이비드 랜즈의 저서 ‘국가의 부와 빈곤’에 등장하는 일본에 온 서양인들이 1881년, 1915년에 한 말들이다.

일본이 1853년 미국의 압력으로 개항한 후 서양 사업가들은 ‘일본의 임금은 싸지만 생산성도 그만큼 낮다’는 식의 평을 했다. 그러나 이런 이미지는 근대화 과정에서 완전히 뒤바뀐다. 개항 후 일본 지도자들은 자국의 후진성을 절감하고 서구를 쫓아가기 위해 세계적으로 전례를 찾기 힘든 수준의 국가적 노력을 경주했다. 유럽과 미국에 사람을 보내 기술을 배우게 했을 뿐 아니라 서구의 제도 법률 군사조직을 도입해 환골탈태를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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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학자들은 일본은 동양의 변방에서 대륙의 선진 문물을 수입, 모방해왔기 때문에 모방의 대상을 바꾸기만 하면 됐다고 설명한다. 일본에 초청돼 활동하던 미국의 동양학자 윌리엄 그리피스는 19세기 말에 이미 “동방의 먼 끝에 있던 일본은 이제 우리의 가장 가까운 서쪽 이웃이 됐다”고 했다. 미국 서해안에서 지리적으로 가까울 뿐 아니라 지적인 면에서도 가까운 나라가 됐다는 뜻이다.

그러나 일본이 미국과의 격차를 좁히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본의 1인당 소득은 구매력 기준으로 개항 당시 미국의 32%였고, 태평양전쟁 직전인 1940년에도 미국의 35%에 머물렀다(갭마인더 데이터). 격차를 유지하며 따라가는 정도였다. 패전 직후 일본의 1인당 소득은 미국의 10%로 추락하지만 6·25전쟁 특수를 발판으로 한 고도성장과 함께 본격적인 추격을 시작해 1970년에는 미국의 61%, 1981년에는 70%, 그리고 1991년에는 86%로 정점을 찍게 된다. 이후 격차는 다시 벌어져 지난해 일본의 1인당 소득은 미국의 71%였다.

우리는 어떤가. 일본이 개항할 때 조선의 1인당 소득은 일본의 48%였다. 1940년에는 일본의 33%였으니 일제강점기에도 일본과의 격차는 컸다. 본격적인 추격은 1970년대 이후 이뤄지는데, 한국의 1인당 소득은 1991년 일본의 41%, 2000년 61%, 2004년 70%, 2009년 83%, 2014년 90%, 2018년 94%가 됐다. 이 추세로 가면 몇 년 후 일본을 추월한다.

물론 쉽게 낙관할 일은 아니다. 국민소득은 경제의 실력, 즉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상누각일 수 있다. 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120개 중점과학기술에 대해 조사한 ‘2018년 기술수준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최고를 100이라 할 때 미국은 100점, 유럽연합(EU)은 95점, 일본은 88점, 한국은 77점, 중국은 76점이다. 미국이 대부분의 핵심 기술에서 절대강자 지위를 유지하며 EU와 함께 선도그룹을 이끌고 있다. 일본은 선도그룹이면서 추격그룹에도 한 발을 걸치고 있고, 한국은 초정밀 디스플레이(98점), 초고집적 반도체(94점) 등 몇 개가 최첨단에 가깝지만 많은 분야에서 추격자다.

최근 일본의 수출 규제는 한국 기술 중 세계 최고에 근접한 것들을 정확히 겨냥했다. 88점이 77점에게 자기 허락 없이는 우등생 클럽에 들어올 수 없다고 경고하는 모양새다. 산업혁명 이후 기술 선도국 클럽에는 서구 국가만 있었다. 20세기 후반에 비서구 국가로는 유일하게 일본이 들어갔다. 한국은 그런 일본을 선진 기술을 받아들이는 통로로 활용한 면이 있고, 그 결과 일제 소재, 부품에 많이 의존하게 됐다. 그 대신 일본은 막대한 무역흑자로 부를 축적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분업구조는 이제 좋든 싫든 바뀔 수밖에 없게 됐다.

한국은 핵심 소재, 부품 국산화에 적극 투자하고 일본 이외의 기술 선도국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길로 갈 수밖에 없다. 이런 시도가 성공할 수 있을까. 조정의 고통은 있겠지만 한국의 인적, 물적 역량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단, ‘한국인들은 국익보다 당파의 이익을 위해 서로 싸우는 종족이고 일본의 지도를 받아야만 발전할 수 있다’는 ‘식민사학’의 주술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말이다.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한미일 기술격차#일본 경제#1인당 소득#일본 수출 규제#한국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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