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인실]국가재정전략회의 유감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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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지출 주문한 文대통령 발언에 경제 오히려 더 꼬일까 우려 커져
대표 정책 일자리는 ‘고용 참사’
침체된 민간경제 살리는 게 급선무

이인실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이인실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초록이 물드는 아름다운 계절이라 실내에만 있기는 너무 아깝기도 했지만 어버이날, 스승의날 등 이런저런 모임과 행사들에 묻혀 지내다 보니 5월도 벌써 하순에 접어들었다. 모임에서 만난 가족, 친지, 친구, 제자들, 만나는 사람마다 어깨가 처져 있고 유난히 경제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문재인 정부 2주년을 맞아 열린 각종 정책에 대한 평가 자리에서도 경제 문제에 대한 고민이 주류를 이뤘다. 정부 경제정책의 가장 큰 역할 중 하나는 불확실성을 줄여주는 일인데 경제 문제들이 해결되기는커녕 더욱 꼬일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16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다. 대통령과 각 부처 장관들, 당청 고위 관계자가 참석해 국가 재정 운용의 큰 방향과 전략을 결정하는 재정 분야 최고 의사결정 자리였다. 이 회의에서 대통령은 재정이 우리 사회의 중장기 구조 개선뿐 아니라 단기 경기 대응도 해야 한다며 기획재정부의 보수적 재정운용 태도를 지적하고 재정 지출을 더 늘릴 것을 주문했다는 보도가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인 증가율 9.7%의 올해 예산을 제대로 써보기도 전에 경기침체를 막겠다며 추경예산을 편성하면서 말이다.

현 정부 들어 확대 재정지출에도 방향을 못 잡고 헤매는 대표적 정책 중 하나가 일자리정책이다. 고용노동부가 7일 고용정책심의회에서 과거 2년간 일자리정책을 평가한 바에 의하면 지난해 19조2000억 원의 일자리 예산으로 831만 명이 일자리사업에 참여했지만 그 결과는 고용참사였다. 특히 노인 등 취약계층의 일자리사업 중 사업 종료 후 민간 일자리로 연결된 취업률이 16.8%에 불과했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장년고용안정지원금과 고용안정장려금 사업도 한마디로 일회성 일자리에 그쳤다. 시간선택제, 신규고용지원제도 등도 산업현장에서 단기성 아르바이트로 끝나버려 고용 안정이나 일자리 창출이란 정책목표는 이루지 못하고 국민의 세금만 쓴 결과를 가져왔다. 그나마 고용부는 일자리사업 일몰제와 각종 사업 통폐합이라는 치열한 반성의 결과물을 내놓아 다행이다.

혁신적 포용국가에 시동을 걸었고 가속페달을 밟아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지금처럼 일시적 경기부양용으로 써버리는 재정지출을 이어가서는 안 된다. 세간의 재정만능주의 풍조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채무(일반정부 총채무)비율이 2017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80.9%였고 한국은 44.5%로 절반밖에 안 되니 우리 재정건전성은 재정지출을 늘려도 견딜 만하다는 잘못된 논리가 숨어 있다. OECD 국가의 정부채무비율이 전쟁 중도 아닌데 이렇게 높은 것은 일찍이 겪어보지 못했던 일이다. 대부분의 고(高)정부채무 국가들은 재정 여력을 뒷받침하는 조세권과 발권력을 갖춘 국가들로 우리와 비교대상이 아니다. 2018년 기준 GDP 대비 복지지출 비중이 한국은 11.1%로 OECD 평균 21.5%의 절반에 불과해 10%포인트는 더 복지지출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논리도 한국적 현실을 외면한 것이다. 세계 최고로 빠른 우리의 인구 고령화 추세 때문에 새로운 복지정책을 더 도입하지 않아도 2060년에는 복지지출 비중이 27.8%로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처럼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

국내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다 보니 투자자들은 국내 투자를 꺼리고 해외로 나가고 있다. 지난해 내국인의 해외직접투자 순유출 규모가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반면 지난해 최대 규모였던 외국인 직접투자는 올 1분기 7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일자리 창출에 부정적 작용을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올해 경상수지 흑자가 지난해보다 상당 폭 감소할 것이 예상되는데 혹시라도 위급한 상황이 생기거나 투자 조정을 하고 싶어도 외화 유동성을 조정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최근의 경제성장 둔화는 총요소생산성이 떨어지고 생산요소 투입이 줄어드는 구조적 요인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혁신성장을 야멸차게 추진하려면 정부가 나서 이해관계가 큰 분야에 대한 해결부터 해주어 민간경제가 잘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지난주 급격한 원-달러 환율 상승에는 미중(美中) 무역분쟁 영향도 있지만 국내외 투자자들이 우리의 정책 불확실성에 대해 불안해 한다는 점도 반영돼 있다. 지금 우리 경제는 수요 부족으로 인한 내수침체 상황이다. 정부가 아닌 가계와 기업이 신명나게 지출할 수 있게 해줘야 경제가 살아난다. 그래야 내년 5월 모임에는 계절에 걸맞게 밝은 모습으로 만날 수 있겠다.
 
이인실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국가재정전략회의#고용 참사#확대 재정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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