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재경]법률에 맺힌 사랑의 열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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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34조 ‘인간답게 생활할 권리’… 우리 헌법과 법률엔 온기가 있다
사회복지사업법, 모금 개념 도입
법전 속에서 꽃피운 ‘사랑의열매’ 사회 곳곳에 온기 전파하기를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법무연수원 석좌교수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법무연수원 석좌교수
‘가면 반드시 돌아오니 해이고, 밝으면 반드시 어두워지니 밤이로다. 그런데 섣달 그믐밤에 꼭 밤을 지새우는 까닭은 무엇인가?’

‘(연말에) 함양의 여관에서 주사위 놀이를 한 사람은 누구인가? 여관에서 쓸쓸히 깜박이는 등불을 켜놓고 잠을 못 이룬 사람은 왜 그랬는가?’

‘어렸을 때는 새해가 오는 것을 다투어 기뻐하지만, 점차 나이를 먹으면 모두 서글픈 마음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노년의 스산한 정서를 담은 이 글은 시(詩)가 아니라 1616년 광해군이 과거(증광회시)에 낸 시험 문제이다. 어떻게 답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추운 연말이다. ‘천 파운드의 법전에는 1온스의 온정도 없다’는 말이 있다. 1파운드가 16온스니 법의 차가움을 강조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은 온기가 있다.

헌법은 제34조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하고,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 사유로 생활 능력이 없는 국민은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한다.

이 같은 헌법 정신은 여러 가지 법률로 구체화됐다. 기본적인 법률이 1970년 1월 1일 제정된 사회복지사업법이다. 당시의 사회복지사업은 비교적 간단했다. 각종 생활보호 및 아동복지, 윤락행위 선도, 사회복지 상담, 재해 구호, 부랑인 선도 등과 복지시설 운영이 주된 것이었다. 이 법률이 크게 기여한 것은 사회복지 사업에 국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공동 모금’ 개념을 도입하고, 그것을 전담할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설립 근거를 둔 것이다.

국가가 발전하면서 사회복지의 스펙트럼은 다양하게 확대되었다. 현행 사회복지사업법은 과거의 불우이웃돕기 차원을 넘어 ‘사회복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의사에 따라 서비스를 신청하고 제공받을 수 있으며, 제공하는 자는 사회복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인권을 보장하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등 사회복지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의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전향적 영역까지 도달했다. 사업 범주도 다양해졌다. 사회복지에 관한 개별 법률이 정하는 보호·선도·복지 사업과 함께 직업 지원, 무료 숙박, 의료 복지, 정신질환자 및 한센 병력자의 사회 복귀 사업 및 이와 관련된 자원봉사 활동, 복지시설 운영과 지원 등을 망라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1998년 7월 별도의 ‘사회복지공동모금법’이 제정됐다. 공동모금회는 사회복지공동모금 사업과 모금된 재원의 운용·관리 및 배분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모금회의 상징이 연말의 온기를 대변하는 ‘사랑의열매’다. 사랑의열매는 1966년 수재민돕기 성금 모금 당시 기부자들에게 나눠준 동참의 징표로 탄생했다. 그 후 이웃돕기의 상징물로 사용되면서 국민들에게 친근한 존재가 되었고, 1998년 공동모금회의 공식 상징물로 등록됐다.

겨울 눈꽃 사이에 달린 백당나무의 빨간 열매를 닮은 사랑의열매는 추운 계절에 주위를 돌아보는 따뜻한 이웃사랑의 상징이다. 공동모금회는 금년 연말을 맞아 내년 1월 31일까지 4105억 원을 목표로 ‘희망 2019 나눔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지난달 20일 광화문광장과 전국 17개 광역시도에 ‘사랑의 온도탑’을 세웠다.

목표액의 1%가 모금될 때마다 수은주가 1도씩 오르는데 어제 기준 모금액이 1360억 원으로 수은주는 33.1도였다. 3년 전인 2015년 12월 15일 39.9도였으니 추운 셈이다. 지속적인 경기 침체와 불황, 기부 문화에 대한 불신이 올겨울을 더 춥게 만들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희망의 조짐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정보기술(IT)의 발달과 함께 다양한 ‘기부 애플리케이션’이 젊은이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 걸음 수에 따라 포인트를 적립해 모금에 보태거나, 광고 시청 및 게임 참가 등으로 자선단체를 돕는 후원형 서비스 앱도 등장했다.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봉사하는 재능기부 역시 활발해지고 있다. 주변의 법조인들도 ‘마을 변호사 제도’ ‘학교 전담 변호사 제도’ 등 다양한 프로보노(Pro Bono·공공의 이익을 위한 무료봉사) 활동에 동참하고 있다. 차갑다는 법전 속에서 맺힌 사랑의열매가 우리 사회 구석진 곳마다 따뜻한 온기를 전파할 수 있도록 기원한다.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법무연수원 석좌교수
#헌법#사랑의열매#사회복지사업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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