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재경]‘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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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에게 화염병 투척 남모 씨… 고희 훌쩍 넘긴 74세 나이 놀라워
고령사회, 노인범죄 나 홀로 급증… 교정시설 고령수용자 10년간 3배
노인교도소, 의료진 증원 등 필요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법무연수원 석좌교수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법무연수원 석좌교수
어제 74세 남모 씨가 구속됐다. 그는 강원도 홍천에서 농사를 짓다가 농장을 잃게 되자 소송을 냈으나 패소했다. 판결에 불만을 품고 대법원장 면담을 요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이다가 김명수 대법원장의 출근 차량에 불붙인 화염병을 투척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대한민국 사법부 수장이 피습당한 사상 초유의 불상사였다. 이 사건을 보는 사회의 시각은 매우 다양하다. 2018년 대한민국, 우리가 같은 시공간을 살고 있기나 한 것일까 의문이 들 정도다.

법치주의는 재판 결과에 대한 승복을 전제로 한다. 재판에 불만이 있다고 판사를 공격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테러, 법치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이 정론이다. 물론 사법부의 반성과 개혁이 필요하다거나 남 씨를 동정하는 의견도 없지는 않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그런 일을 저질렀겠느냐’는 인도적 견해는 이해할 수 있지만 ‘민주열사’ ‘의인’으로 정당화하는 시각은 유감이다.

1989년 제정된 화염병처벌법이 실정법으로 엄존하고 있다는 것 못지않게 남 씨의 나이가 고희(古稀)를 훌쩍 넘겼다는 것은 놀랍다. 유엔은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7%이면 ‘고령화사회’, 14%를 넘으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규정한다. 우리나라는 2000년 고령화사회에 들어섰고 17년 만인 지난해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의학의 발달과 함께 자연스럽게 다가온 고령사회는 다양한 사회 문제를 야기한다. 노인 범죄도 급증하는 추세다. 2013년 7만7260명이던 65세 이상 범죄자 수는 2017년 11만2360명으로 5년 새 1.5배나 늘었다. 전체 범죄 수가 지속적 감소 추세인 것과 정반대의 흐름이다. 노인 범죄는 전과자 비율이 80% 이상일 정도로 재범률이 높고, 그 양상도 흉악하고 대범해졌다.

노인 범죄의 원인은 다양하다. 개인적으로는 신체 기능 저하에 따른 우울증과 자신감 상실 분노 등이, 사회 환경적으로는 노인 부양 부담 증가에 따른 가족 갈등과 불화, 사회로부터의 소외 등과 퇴직으로 인한 수입원 상실 등이 꼽힌다. 노인 범죄 증가로 교정시설의 고령 수용자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교정시설에 수용된 전체 수용자 5만5198명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은 2542명(4.61%)이었다. 2008년 886명(1.85%)이었으니 10년간 3배 가까이로 늘어난 것이다.

노인 전문 교도소 설립, 노인 수용 매뉴얼, 출소 후 대책 등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 교정시설의 의료 인력 부족은 심각하다. 8월 말 전국 교정시설 내 의사는 94명으로 정원 116명에 훨씬 미달한다. 청송의 경북북부제2교도소에는 의사가 없고 장흥·해남교도소에는 간호사가 없다.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지만 자녀가 노부모를 모셔야 된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오히려 낮아졌다. 부모들의 자녀들에 대한 노후 기대도 사라지고 있다. 형사정책 차원을 넘어서 사회복지 측면의 대안이 함께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민법에 자녀의 노부모 부양 의무 규정을 신설하자는 박종렬 광주여대 교수의 주장은 경청할 바가 있다. 그에 따르면 독일은 1950년대부터 부양 의무자로부터 부양받지 못하는 노부모들을 정부가 책임지고 있고, 영국은 부양 의무자가 부양을 이행하지 않아 국가가 대행한 경우 부양 의무자를 처벌하고 있다. 중국은 헌법 제49조에서 ‘성인의 자식은 부모를 부양하고 부조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노인권익보장법은 ‘60세 이상 부모가 생존하고 있는 경우 자식들은 금전적 정신적 도움을 줘야 하고 노부모와 따로 사는 가족 구성원은 수시로 집을 찾아 노부모의 문안을 물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우리 민법은 제974조에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 간, 기타 친족 간은 서로 부양의 의무가 있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노부모 부양은 자녀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경우의 2차적 의무로 보고 있으니 부양 의무를 구체화하자는 것이 박 교수의 주장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에게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이 미안하다면 사회복지적 차원의 국가 개입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어려운 시절의 연말을 맞으면서 ‘노인을 위한 나라’를 희구한다.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법무연수원 석좌교수
#법치주의#화염병처벌법#고령사회#노인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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