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재경]고향을 묻지 맙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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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민심 ‘TK 소외론’ 부글부글… 이젠 ‘지역 안배’ 말조차 없어
실력으로 차별 극복한 우즈처럼 공직자는 업무능력으로 말할 뿐
고향은 인종처럼 죄가 아니다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법무연수원 석좌교수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법무연수원 석좌교수
고향에서 추석 차례를 지낸 뒤 대구로 가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왔다. 명절엔 늘 같은 동선이다. 경부고속도로와 통영대전고속도로를 거쳐 산청에 도착. 거기서 광주대구고속도로(88고속도로)를 타고 대구에 갔다가 상경한다. 추석 연휴 중 두 가지 일이 마음에 남았다. ‘대구 친구의 질문’과 ‘타이거 우즈의 귀환’이다.

평생 대구에서 살고 있는 친구는 “지금 정부에서 대구경북(TK)이 홀대를 받고 있다는데 동의하느냐”고 내게 물었다. 1990년 말 검찰 인사 이후 서울중앙지검의 부서 배치 와중에 상사로부터 뜬금없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신은 TK냐? PK냐?”

무슨 뜻이냐고 되물었다. 경남 산청 출신이라 부산경남(PK)인 것 같은데 대구에서 초중고교를 다니고 자랐으니 애매하다는 뜻이라고 했다. 왜 그것을 따지느냐고 다시 물었다. 특수부 검사 배치에 지역을 고려하라는 법무부 지침이 내려왔다는 것이다. 당시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나 자신 아직도 정답을 갖고 있지 못한 것 같다.

내 본관은 화순(和順)이다. 조선시대 기준으로 따지자면 전라도 화순 사람이다. 1575년 선조가 세거(世居)하던 서울을 떠나 진주로 내려갔고 인근에 터를 잡아 443년간 살아왔기에 그곳이 내 고향으로 된 것뿐이다. 거주 기간으로는 서울 사람이다. 산청 10년과 대구 10년을 뺀 대부분의 삶을 서울에서 살았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공직 인사와 예산 배정에 TK 지역이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다는 불만이 상당하다. 실제로 그런지는 실증적으로 분석해본 바 없고 그럴 능력도 없다. 법조계에서 주요 사법간부 출신 지역이 다소 편중되어 있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그런 현상을 지적하는 칼럼이나 비평도 있었다.

인사권자들이 의도적으로 특정 지역을 배제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믿는다. 적재적소, 능력 위주로 발탁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다. 과거 10년간 TK가 요직을 독식했으니 이제 어느 정도 손해를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요즘 인선이 진행 중인 대법관과 헌법재판관만 놓고 보면 이런 ‘포식론(飽食論)’은 사실이 아니다. 더구나 국정에서 정론이 될 수는 없다. 여야 간의 정권교체가 반복되면서 소위 TK, PK, 호남 등 특정 지역 인사편중 시비가 점차 해소되기를 바랐지만 갈 길이 멀다. 과거에는 ‘지역 안배’라는 말이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말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국민의 마음에 집단적 소외의식의 응어리가 생기면 없애기 어렵다. 고향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고 서로 도와주는 것은 인지상정,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 특유의 현상이 아닌 세계 보편적 경향이다. 중국인들의 고향 따지기는 유명하지 않은가.

하지만 공적인 영역은 다른 문제다. ‘나눠 먹기’를 하거나 정실에 치우쳐 가깝고 믿는 사람만 써서는 안 된다. ‘고향 사람은 믿을 수 있다’는 인식이 인사 배경으로 작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명제는 참이 아니다. 사람 나름이고, 오히려 가까운 사람이 배신하는 경우가 흔하다. 개인적 경험이나 사건 사례를 보더라도 그것은 명백하다.

추석날 아침 차례를 준비하면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승리를 지켜봤다. 성추문과 음주사고로 끝없는 나락에 떨어진 지 5년 1개월, 1876일 만의 기적 같은 부활! 허리와 다리가 아파 걷지도, 눕지도 못하는 고통에 시달리면서 말 못 할 치욕을 견디고 가혹한 운명에 맞서 자신을 끊임없이 단련해 만 42세의 노장 투혼으로 정상에 복귀했다. 스포츠에서는 실력이 모든 것을 좌우할 뿐, 출신 지역이나 인종은 중요하지 않다. 우즈는 오직 실력만으로 어떤 차별과 불운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공직도 마찬가지다. 국리민복에 기여해야 하는 사명을 가진 공직자는 헌법과 법률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하는 업무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그것 외에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소위 글로벌 시대, 온라인 시대다. 전국이 일일생활권으로 좁아졌고, 세계가 동기화되어 있는 오늘날 출신 지역 운운하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 고향은 선택할 수도, 바꿀 수도 없다. 운명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 ‘인종’과 마찬가지다. 그것을 따져서 가까운 사람을 배려한다면 다른 쪽이 차별받게 된다. 고향이 죄는 아니다.
 
최재경 객원논설위원·법무연수원 석좌교수
#대구경북#tk#공직 인사#소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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