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종수]산골 숲에서 느끼는 황홀한 저녁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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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주의 숭배 결과 한계상황 목격
숲에 머물며 매일 새로운 세상 느끼고 자연에서 문명을 생각하는 힘 얻어
사회, 정치적으로도 자신의 정원 가꿔야 진실하지 않은 정치에 휩쓸리지 않아

이종수 객원논설위원·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이종수 객원논설위원·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나는 청년기부터 간디를 존경했지만 한 가지 납득할 수 없는 사실이 있었다. 간디는 산업주의를 철저히 배격하고 반대했다. 그가 전개한 평등과 비폭력, 스와데시(애국) 스와라지(공동체 자치) 운동이 모두 위대해 보였지만 산업주의에 반대한 그의 생각을 산업주의가 완벽히 지배하는 시대에 태어난 나로서는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 다시 간디를 생각한다. 산업주의를 숭배한 결과 인류가 경험하게 된 한계상황을 목격하면서 그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참기 힘든 미세먼지와 폭염에 맞닥뜨리고 나서야 간디가 틀린 것은 불과 100년의 기간이었을 뿐이고 인류 문명사 전체를 놓고 보면 그가 옳았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기후변화와 환경파괴가 지금처럼 지속된다면 한반도의 동해안은 150년 내에 물고기가 살 수 없는 바다로 변모한다는 경고가 나왔다. 지난 33년간 수온이 오르고 수심 500m까지 바닷물에 녹아있는 산소가 물 1L당 1000분의 0.46L 줄어든 결과를 토대로 만들어진 예측이다. 스티븐 호킹은 지구온난화 때문에 인류 문명이 종말을 맞을 수 있다고 진단하면서 향후 200년 내에 인류는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는 게 필요하다고 충고하며 별나라로 갔다.

나는 다른 행성으로의 탈출을 시도하지는 않고 있다. 그 대신 10년 전부터 산속에 마을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고 지금은 일주일에 며칠을 숲에 머문다. 도시가 살인적인 폭염으로 아우성치는 여름에도 숲속에서는 오리털 이불을 덮고 자야 했다. 낮에 조금 더운 수준이지만 선풍기 없이도 너끈히 지낼 만하고 밤에는 외려 춥다.

산골의 숲에 머물며 가장 황홀하고 신비하게 느끼는 시간은 아침과 저녁이다. 정확히 서양 사람들이 ‘매직 아워’라 부르는 시간이다. 아침엔 여명 사이로 해가 솟고 저녁에는 노을이 매일 새로운 세상을 선사한다. 마치 자연에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는 의식(ritual)이 뚜렷이 존재하는 듯하다. 저녁 무렵 그늘에 앉아 살갗에 스치는 바람을 느끼는 것은 황홀하다.

농약과 비료를 치지 않고 키운 옥수수, 토마토의 맛도 일품이다. 도시에서 사먹는 맛과 전혀 다르다. 하늘이 우리에게 준 본래의 맛은 이러했는데, 어쩌다 우리는 식탁을 오염시켜 먹고살게 되었을까 반성하게 된다. 학교에서 일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허겁지겁 산골에 도착해 감자나 옥수수로 저녁을 마련해도 그것을 입에 대는 순간 나의 머리에는 하나의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Glorious. 하늘에 영광!’

앞으로는 기회가 될 때마다 나의 학생들을 산골에 초대하여 쉼을 얻고 농사를 경험하게 하고 싶다. 제자들을 모두 농사꾼으로 만들고 싶은 게 아니다. 흙과 풀을 만지며 휴식을 누릴 줄 알고, 자연과 농사에서 문명을 생각하는 힘을 얻게 하고픈 것이다.

봄에 힘써 파종하고 여름에 참외와 옥수수 맛이 어떻게 다른지 느끼게 하고 싶다. 흙 속에 손을 넣어 고구마를 캐는 순간 보물을 찾는 기쁨을 느끼며 연보랏빛이 밝은 고구마를 보게 하고 싶다. 농약을 친 밭에 풀조차 나지 않는 것을 보며 왜 우리가 흙을 살려야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유년의 어린이들이 산골 숲에 올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국민시인 김소월과 정지용을 생각해보자. 이들은 평북 구성과 충북 옥천의 자연이 길러낸 시인들이다. 이들의 작품에서 자연에 대한 경험을 뺀다면 무엇이 남겠는가? 그림과 음악, 과학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거장들이 자연을 베낌으로써 위대한 작품을 남겼다. 과학에서도 비행기의 설계부터 기계 제작까지 자연의 원리를 따라 하는 ‘생체모방’이 하나의 흐름이다.

사회적, 정치적으로도 우리는 각자 자신의 정원을 가꿀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근거 없는 낙관주의와 비관주의에 혼을 빼앗기지 않고, 진실하지 않은 진보와 보수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볼테르가 ‘캉디드’에서 마지막으로 하는 말도 이것이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정원을 가꾸어야 합니다.
 
이종수 객원논설위원·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간디#산업주의#캉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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