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승옥]신흥국에 잡힌 한국 스포츠, 과학으로 체질 개선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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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스포츠 전문가마다 자신만의 관전법이 있다. 한 전문가는 이번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에서 우리 선수들의 입만 쳐다봤다고 한다. 경기 후반에 입이 벌어진 선수가 꽤 있었고, 그런 선수들은 100% 패했다고 했다. 입이 벌어졌다는 건 체력이 달린다는 건데, 그는 “우리 스포츠의 현주소를 보여 준다”며 안타까워했다.

금메달 65개로, 6회 대회 연속 2위를 목표로 내건 태극전사들의 성적이 신통찮다. 일본에 이은 3위인데, 금메달 10개 정도 뒤졌다. 일본과의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향후 메달 상황이 좋지 않다. 지금 추세라면 우리 금메달은 50여 개에 머물 것 같다.

주력 종목 태권도의 금메달은 목표치의 절반에 불과했고, ‘믿고 보는’ 종목인 양궁조차 아시아 무대에서 불안했다. 다른 종목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종목 관계자들은 “전력 평준화”라고 말했다. 우리는 주춤한 반면 다른 나라들은 많이 성장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부진은 예상됐다. 엘리트-생활 체육 통합, 국정 농단 등의 요인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성공 모델이 흔들렸다. 우리 스포츠의 핵심 키워드는 근면과 투혼이었다. 남들보다 한발 더 뛰고, 더 악착같이 승부했다. “죽도록 운동했다”는 메달리스트의 말은 어느 대회에서도 빠지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양적으로 체력과 기술을 키웠다.

그런데 토양이 달라졌다. 강압적이고 과도한 훈련은 사회가 용인하지 않고, 선수들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선수들은 또 운동과 학교 공부를 병행해야 한다. 연습량이 곧 경쟁력이었는데, 그게 예전처럼 안됐다. 그렇다고 다른 방법을 찾은 것도 아니다.

그사이 우리보다 한 수 아래였던 나라들은 급성장을 했다. 특히 우리의 전략 종목 등에서 후발 주자들이 우리의 성공 모델을 벤치마킹했다. 지옥 훈련을 따라 하고, 우리 지도자들을 영입해 기술까지 이식받았다. 양궁은 아시아 7개국 지도자가 한국 사람이다. 태권도는 말할 것도 없다. 베트남 축구만 해도 박항서 감독 영입 효과를 제대로 보고 있다.

우리가 종주국인 태권도는 ‘전력 평준화’로 가장 고전하고 있는 종목이다. 과거엔 기술 차이가 워낙 커서 금메달을 휩쓸었다. 요즘엔 기술이 비슷해졌는데, 신체조건과 체력에서 밀리면서 3라운드에서 입이 벌어졌다. 다른 나라보다 발차기 훈련량이 더 많지도 않지만, 이젠 그렇게 해도 이기기 어렵게 됐다.

양을 버리고 질을 취해야 할 때다. 과학 훈련이 답이다. 태권도 종목은 근력과 관련이 있는 무산소성 운동이 80%, 심폐 능력과 연관된 유산소성 운동이 20%를 차지한다. 근력이 좋아야 기술도 잘 구현하고 체력적으로도 밀리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달리기 등 유산소 운동에 열중해 왔다. 태권도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도 아직은 주먹구구식 훈련이 많다. 지도자의 마인드도 문제지만 과학화를 위한 장비나 인력도 부족하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는 일본은 이번에 수영에서 두 자릿수 금메달을 따냈다. 선천적으로 체격과 체력에서 우리보다 나을 게 없는 그들은 과학으로 무장했다. 수영장에 설치된 특수 카메라가 추출한 빅데이터로 개인별 최적화된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실제 경기장과 똑같은 압력과 습도로 맞춰진 시설에서 적응 훈련을 했다. 기초종목에서 ‘탈아시아’를 선언할 만하다.

이번 아시아경기는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을 주문하고 있다. 질적 개선을 하지 못하면 올림픽은 고사하고 아시아 무대에서조차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윤승옥 채널A 스포츠부장 touch@donga.com
#아시아경기#한국 스포츠#스포츠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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