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차진아]사법개혁의 올바른 방향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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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안의 분권이 사법민주화다
법원행정처 어떻게 바꾸든 대법원장 측근 득세하면 도루묵
진정한 사법독립 원한다면 靑, 대법관 코드인사 깨버려야

차진아 객원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차진아 객원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민주국가를 지탱하는 세 기둥이 입법, 행정, 사법이라면 이 세 기둥의 높이는 같아야 한다. 어느 하나가 조금 더 굵고 단단하면 더 많은 하중을 지탱할 수는 있지만, 그 높이 자체가 달라지면 건물의 무게중심이 깨지고 건물 자체가 붕괴될 위험이 커진다.

최근 우리나라의 상황은 야당이 제 역할을 못하는 가운데 국회의 존재감이 약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이른바 ‘재판거래 의혹’ 이후 법원이 최악의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이는 법원만의, 사법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라 전체의 위기로 인식되어야 한다. 사법이라는 기둥이 무너지면 대한민국이라는 건물도 함께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국회를 불신하고 법원을 비난하며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지지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가! 입법과 사법이 무력화된 가운데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대통령과 정부가 독주하게 된다면, 이것은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와 다를 바 없다. 모든 민주국가가 삼권분립을 강조하고 입법과 사법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특히 사법은 법치의 최후 보루이자 인권의 최종 수호자라 일컬어진다. 이러한 사법이 무력화된다면 다수의 횡포로부터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포퓰리즘의 유혹으로부터 헌법의 근본 가치를 수호하는 것은 누가 담당할 것인가? 물론 목하의 사태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법원에 있다. 그러나 법원의 잘못이 있었다고 해서 법원을, 사법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식수원이 오염되었다고 해서 물을 마시지 않을 수는 없는 것처럼, 법원에 문제가 있으면 개혁을 통해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지 이를 비판하고 비난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사법개혁의 올바른 방향은 인식의 전환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국민이 헬조선이라며 나라를 욕할지라도 나라 없는 시절에 비해서는 지금이 훨씬 낫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듯이, 잘못을 많이 저지른 법원이라 해서 차라리 없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국민의 관심과 지원 속에서 사법이 올바른 방향으로 바뀔 수 있도록 힘을 보태야 한다. 그것이 나라가 바로 서는 길이고 국민이 잘되기 위한 것이다.

다만, 사법이 바로 선다는 것의 의미를 분명히 해야 한다. 사법은 법치의 수호자이고 인권의 보호자이다. 민주적 다수결과는 다른 관점에서 그러하다. 민주적 다수라 해서 항상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자격을 갖춘 법관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단을 통해 소수자의 인권을 다수의 횡포로부터 보호할 수 있을 때, 민주주의가 올바르게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상호 보완이다.

최근 일각에서는 사법의 민주화를 주장하면서 법원장을 법관들이 직접 선거하고, 법관들로부터 선출된 법관 대표들과 법원장이 주축이 되어 사법행정을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이는 법원 안에 파벌을 만들고 법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깨뜨려 결국 사법의 객관성과 공정성이라는 본질적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 영국이나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들이 왜 그런 방식을 취하지 않고 있겠는가.

물론 현재의 사법시스템에 문제가 크고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진정한 사법의 독립을 위해서는 대통령이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코드인사로 임명하는 것부터 바꿔야 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청와대에 찾아가 상고법원 설치를 부탁하였던 것도 이러한 구조 때문에 가능했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법원행정처의 개혁도 필요하다. 다만, 그 본질은 제왕적 대법원장의 폐해를 막는 것이지 사법행정을 누가 담당하느냐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 누가 담당하더라도 대법원장의 측근 인사들이 주축이 된다면 같은 결과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법관들의 선거에 기반한 인사들이 주축이 된다면 법원 자체가 진흙탕 싸움을 일삼는 국회와 별다를 바 없게 될 우려가 크다.

사법의 본질에 맞는 사법민주화는 법관들의 선거가 아니라 법원 안에서의 분권 및 대법원장과 대법관들 사이의 진정한 수평적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대법원장을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차진아 객원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법개혁#양승태 전 대법원장#법원행정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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