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상준]청년실업, 인구구조만의 문제가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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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 객원논설위원·일본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일본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몇 해 전 졸업한 일본인 제자에게서 메일이 왔다. 내 수업에 와서 자기 부서의 업무를 설명하고 관심이 있는 4학년 학생이 있으면 면접을 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일종의 소규모 취업설명회인 셈이다. 그 제자가 다니는 회사는 일본 유수 금융그룹의 계열사이다. 그런데도 굳이 내 수업에까지 와서 구직자를 찾는 것은 지금 일본의 구인난이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언론 보도를 보면 현재 일본이 겪고 있는 구인난을 인구구조의 변화에 기인한 것으로 단순화시키는 시각을 자주 접할 수 있다. 20대 인구가 감소하기 때문에 인력난이 심해지고 있다는 해석이다. 같은 시각으로 본다면 한국의 청년실업은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다. 최근 일시적으로 증가한 청년인구가 이제 곧 감소하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일본에서는 최근의 구인난을 단순히 인구 감소만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라도 경기가 나빠지면 실업률이 다시 높아질 수 있다는 경계심을 가지고 있다.

1980년 이후 일본의 20대 인구가 최고치를 기록한 것은 1996년의 일이다. 그해 청년실업률은 5.4%였는데 당시로는 사상 최악의 청년실업이었다. 7년 뒤인 2003년까지 20대 인구는 약 11% 감소하였는데 청년실업률은 오히려 8.2%까지 치솟았다. 2000년 이후 6만여 기업이 도산한 결과 경기가 극도로 위축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6.4%까지 내려갔다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2010년 다시 7.9%를 기록하였다. 2010년은 1996년에 비해 약 27%의 청년인구 감소가 있었는데도 그러했다. 일본 청년실업률이 1996년 수준보다 낮은 4%대로 떨어지고 구직자 위주의 시장이 형성된 것은 최근인 2016년부터이다. 청년인구가 정점보다 34% 정도 감소하기도 했지만, 도산 기업 수가 버블 붕괴 후 최저로 떨어지는 등 경기가 살아난 덕이기도 하다.

한국 통계청은 20대 인구가 2018년에 정점을 기록하고 이후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만약 한국의 청년실업이 일본의 패턴을 그대로 따라간다면, 그리고 통계청의 추계가 정확하다면 청년인구가 정점보다 34% 감소하는 2037년경에는 지금의 일본처럼 구직자 위주의 취업시장이 형성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험에서 볼 수 있듯이 청년실업은 인구구조만의 문제가 아니다. 만일 인구가 줄어서 시장 규모가 축소되고 그로 인해 경기가 위축된다면, 그래서 노동인구의 감소보다 일자리의 감소가 더 빠르게 진행된다면 오히려 실업이 증가할 수도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청년실업을 해소하기에는 양질의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구조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일본은 직업을 가진 100명 중 88명이 임금근로자이지만 한국은 74명만이 임금근로자이다. 일본은 88명의 임금근로자 중 25명이 5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한다. 한국은 74명의 근로자 중 불과 9명만이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한다. 더 심각한 것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다. 일본은 중소기업 임금이 대기업의 80% 수준인데 한국은 60% 정도에 불과하다. 인구구조가 지금의 일본처럼 변한다 하더라도 과연 청년실업이 해소될 수 있을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지난달 15일 범정부 차원의 청년실업 대책이 발표되었을 때 일시적 처방에 불과하다는 등 일부의 비판이 있었지만 나는 내심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 당장 구직에 애를 먹고 있는 취업자와 구인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에 도움이 될 것이고 취업난과 구인난이 경기 악화로 이어지는 것을 막는 효과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청년인구가 감소한다고 해서 지금의 일본처럼 구직자가 우대받는 시장을 기대할 수 없다. 중소기업을 어떻게 중견기업으로 육성할 것인지,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임금 격차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는 정부뿐 아니라 기업과 학계, 언론이 다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청년실업으로 인한 소비의 감소와 청년인재 육성의 실패는 가계뿐만 아니라 기업과 국가 전체에 재앙이기 때문이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일본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청년실업#구인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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