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병원 살려야 의료전달체계 산다[기고/이필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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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수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중소병원살리기 특별위원회 위원장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중소병원살리기 특별위원회 위원장
4일 정부는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한 단기대책을 발표했다. 상급종합병원(대학병원)을 이용하는 경증(輕症)환자의 진료비 본인 부담률 인상, 상급종합병원 지정 기준과 수가(酬價)의 중증질환 중심 강화, 지역 우수병원 지정 등이 핵심이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와 병원협회 모두 강한 우려와 반대를 표명해 향후 정책 추진 과정에서 진통이 있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1970년 이래 50년간 저보험료, 저급여, 저수가 기조로 운영돼 왔다. 정부는 저수가와 저보험료는 유지한 채 2017년 8월 상급종합병원 위주로 보험 급여만 확대한 보장성 강화 정책인 ‘문재인 케어’를 대한의사협회의 반대에도 밀어붙였다. 그 결과 비용 부담이 줄어들자 의료 소비자의 상급종합병원 이용률은 폭증하게 됐다. 문재인 케어가 본격 시행되고 1년이 지난 올해 초부터 동네 병의원은 환자가 줄어 심각한 경영난에 허덕인다. 반면 상급종합병원은 밀려드는 환자로 ‘진료 대란’이 발생하고 있다며 볼멘소리를 거듭 내뱉고 있다.

정부는 대형 병원 쏠림 현상이 문재인 케어와 상관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7년 10조9000억 원(전년 대비 3.6% 증가)이던 상급종합병원의 총진료비는 지난해 14조 원(전년 대비 28.7% 증가)으로 급증했다. 총진료비에서 전국 42개 상급종합병원이 차지하는 비율도 2016년 20.9%에서 2017년 20.1%로 감소하다 지난해 22.9%로 증가세로 돌아섰다. 이는 문재인 케어가 의료 소비자의 행태에 영향을 미쳐 의료전달체계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나라는 2045년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의 37%를 차지해 전 세계 최고령 국가가 된다. 질병이 만성질환, 노인성 질환 중심으로 바뀌면서 기존 상급종합병원 중심 의료에서 접근성이 좋은 동네 병의원에서 출생부터 사망까지 전 생애에 걸쳐 건강관리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대가 온다.

‘우문현답.’ 어리석은 질문에 현명한 대답이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이다. 문재인 정부가 강조해 온 국정철학이기도 하다. 정부는 의료관리 이론에 바탕을 둔 탁상공론식 정책에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의료 현장의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동네 병의원을 살려 의료전달체계를 되살리는, 현실성 있는 정책 수립과 시행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중소병원살리기 특별위원회 위원장
#기고#동네 병원#의료전달체계#건강보험#대형 병원 쏠림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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