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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정의당의 치킨게임[오늘과 내일/정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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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정의당의 치킨게임[오늘과 내일/정연욱]

정연욱 논설위원 입력 2020-03-17 03:00수정 2020-03-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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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 공조 끝나자 비례정당 놓고 결별
박빙승부 수도권 선거에 미칠 영향 주목
정연욱 논설위원
2006년 8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특위 위원이었던 심상정과 1시간 가까이 격론을 벌였다. 한미 FTA 찬반 문제가 쟁점이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많은 개방을 했지만 이 모든 것을 다 이겨냈고, 실패한 적이 없다. 한국 사람의 손은 신의 손이라고 생각한다.”(노)

“그건 종교적 낙관 아닙니까.”(심)


“인신공격용 발언은 안 해줬으면 좋겠다.”(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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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화가 난 노무현은 간담회가 끝난 뒤 심상정과 악수도 하지 않은 채 나가려 했으나 참모들이 붙잡았다. 시장 개방을 보는 두 정파 수장의 극명한 시각차를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선거철만 되면 ‘시너지 효과’를 노려 ‘연대와 연합’을 했고, 그 명분은 민주세력 대연합론이었다. 2012년 총선에선 민주당이 노른자위 지역구까지 양보하면서 야권 연대를 했다. 희비는 엇갈렸다. 정의당의 전신인 통합진보당은 13석을 얻어 약진했지만, 민주당은 김용민 막말 파문 등이 겹쳐 패배했다.

두 정파의 공조는 선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입법 거래’로 정점을 찍었다. 지역구 사표(死票)를 줄여 비례의석을 늘리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의당의 오랜 숙원이었다. 정의당은 ‘조국 사태’를 맞아 여당 편을 드는 굴욕까지 감수했다. 지지층 이탈이 가속화하자 심상정은 몇 차례 사과까지 했지만 여당과의 ‘4+1’ 공조를 깰 수는 없었다. 선거법 협상의 합의 처리 원칙도 개의치 않았다. 20석 이상의 원내 교섭단체를 만들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판국에 여당이 만들지 않겠다고 공언한 ‘비례정당’ 창당으로 뒤통수를 쳤으니 그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심상정은 “정의당 이름이 21대 총선 투표용지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겠다”며 여당의 비례정당 참가 요청을 일축했다. 정치는 생물이니 막판 물밑 협상을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 결정을 뒤집기는 어려워 보인다.

공조 파기의 후폭풍은 비례 선거에 머물지 않고, 지역구 선거로 번질 조짐이다. 주 무대는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이다. 수도권 의석수는 121석으로 전체 지역구(253석)의 48%를 차지한다. 수도권 표심(票心)은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민심의 균형추 역할을 했다. 4년 전 총선에서 5000표 미만의 득표 차로 당락이 뒤바뀐 58곳 중 29곳이 수도권이었다. 수도권은 그만큼 박빙의 승부처였다.

정의당이 수도권 선거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수도권 표심의 이런 특성과 무관치 않다. 16일 현재 정의당의 지역구 예비후보 76명 중 38명(50%)이 수도권에 집중됐다. 4년 전 2명의 후보만 냈던 인천 13개 선거구에도 후보 전원을 내겠다고 한다. 박빙의 접전 지역에서 여당 표를 잠식하려는 ‘자객 공천’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여당에선 중진들까지 정의당 때리기에 나섰다. 최근 논란이 된 정의당 비례후보 1번의 ‘대리 게임’ 이력은 여당에서 폭로했다. 양당은 이제 공조의 기억을 날려버리고 서로 물러설 수 없는 ‘치킨게임’에 돌입했다. 노무현-심상정이 맞붙은 한미 FTA 공방의 날 선 분위기가 재연되는 듯하다.

여당은 비례정당 결성에 나서면서 범여권 성향의 원외 정당까지 저인망식으로 흡수하려 한다. 반면 보수 야권은 미래통합당 중심으로 결집하고 있다. 기존의 거대 정당 구도가 와해되기는커녕 더 강화되는 추세다. ‘강 대 강’으로 치닫는 선거전에서 민주-정의당 치킨게임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민주당#정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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