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어둠 속에서만 별을 본다[오늘과 내일/김종석]
더보기

어둠 속에서만 별을 본다[오늘과 내일/김종석]

김종석 스포츠부장 입력 2020-03-14 03:00수정 2020-03-14 03:00
뉴스듣기프린트
트랜드뉴스 보기
역경 딛고 1964년 도쿄 은메달 장창선
끈기로 이겼듯이, 이 터널의 끝도 온다
김종석 스포츠부장
‘당당 세계 2위. 동경(東京)에 감격의 첫 태극기. 한국 레슬링 사상 최초의 은메달. 선수단과 동포 함께 울어.’

동아일보 1964년 10월 15일자 호외 1면에는 이런 제목과 함께 환하게 웃는 한 선수 사진이 크게 실렸다. 주인공은 도쿄 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플라이급에서 은메달을 딴 당시 21세 청년 장창선(77)이다.

반세기 전 장창선의 쾌거는 도쿄가 올 7월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재조명받고 있다. 누군가의 꿈이 되는 삶을 살았던 그는 몇 년째 병마와 힘겹게 싸우고 있다. 지난해 건강 악화로 80일간 입원했다. 아들 장유진 씨는 “노환으로 현재 인천의 한 요양원에 계신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면회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전했다.



장창선은 선수 시절 159cm의 키로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서구 선수들을 연이어 제압했다. 가슴 졸이면서 지글거리는 라디오 중계에 귀를 기울이던 국민들은 올림픽 결승에서 장창선이 일본 요시다 요시카쓰에게 당한 패배에 땅을 쳤지만 당당한 세계 2위였다.

주요기사

4대 독자인 장창선은 6·25전쟁 때 아버지와 헤어진 뒤 어머니 밑에서 컸다. 어머니는 인천 신포시장에서 콩나물 장사를 하며 어렵게 3남매를 키웠다. 어머니 몰래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동아일보 등 신문 배달을 한 장창선은 학창 시절 여름에는 아이스케이크, 겨울에는 찹쌀떡을 팔았다. 그래도 그는 “신문, 아이스케이크통을 들고 산동네를 달리다 보니 하체가 단련됐다”고 밝혔다. 고단한 삶이었지만 긍정의 힘으로 포기하지 않았다.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는 선진 기술을 배우겠다며 백방으로 뛰어다닌 끝에 정부 지원으로 석 달 동안 일본 전지훈련을 다녀왔다. 1966년 세계선수권에서 딴 금메달은 모든 종목을 통틀어 한국 최초였다.

건강을 잃기 전까지 그는 스포츠 행정가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태릉선수촌장으로 후배 뒷바라지에 앞장섰다. 대한민국 스포츠 영웅에도 선정됐다. 아들 장 씨는 “아버지가 올해 도쿄 올림픽을 누구보다 반겼을 텐데…. 쾌차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시아 최초였던 1964년 도쿄 올림픽은 한국 스포츠 발전에 중요한 전기가 됐다. 장창선의 은메달을 계기로 태릉선수촌이 마련됐다. 스포츠 과학도 싹을 틔웠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때 양정모가 레슬링에서 첫 금메달을 차지한 뒤 한국이 올림픽 ‘톱10’에 진입하는 데도 초석이 됐다는 평가다.

올여름 도쿄 올림픽도 기대감이 컸다. 엘리트와 생활 체육 통합 시대를 맞아 한국 스포츠에 새 좌표가 제시되리란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대회 연기, 취소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100개 넘는 국가에서 한국인 입국 금지 및 제한 조치를 취하면서 대표 선수들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도, 탁구, 레슬링 등은 올림픽 본선 티켓이 걸린 국제대회 출전조차 쉽지 않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에 시달리던 선수들에게 4년에 한 번 찾아오는 올림픽은 모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기회지만 이번엔 찬바람이 분다.

장창선은 과거 인터뷰에서 “내게는 고생, 역경을 딛고 일어선 끈기와 노력이 중요했다. 후배들은 더 나은 환경에서 좋은 결실을 맺으면 좋겠다. 국민 성원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의 바람과 달리 현실은 답답하기만 하다. 공교롭게도 장창선이 도쿄에서 은메달을 딴 날 마틴 루서 킹 목사는 최연소(35세)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킹 목사는 이런 명언도 남겼다. ‘오직 어둠 속에서만 별을 볼 수 있다.’

오래도록 땀 흘리며 준비한 선수들이 무사히 올림픽 무대에 서면 좋겠다. 설사 좌절되더라도 꿈의 가치만큼은 지켜지기를 바란다. 터널의 끝은 올 것이다. 그때 더 환한 세상이 펼쳐졌으면. 병상의 장창선도 바랄 것 같다. 세상 사람들처럼.
 
김종석 스포츠부장 kjs0123@donga.com
#장창선#2020 도쿄올림픽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주요뉴스

1/3이전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