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브리핑을 청와대 춘추관에서 해보라[오늘과 내일/이승헌]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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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신뢰 바닥 떨어진 정부의 코로나19 대책
절박함 갖고 靑에서 발표하는 게 대국민 예의

이승헌 정치부장
이승헌 정치부장
“좋은 오후네요. 오늘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에 대처하기 위한 백악관 태스크포스(TF)는 긴 회의를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정부 역량을 총동원해 미국 내 바이러스 확산을 저지하고 있습니다. (중략) 그랜드 프린세스 크루즈선 내 감염자에 대한 조사 결과가 방금 나왔습니다. 21명이 양성 반응입니다….”

6일(현지 시간) 오후 미 워싱턴 백악관 기자실. 트럼프 지시로 미 행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을 총괄하고 있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질병통제예방센터(CDC), 해안경비대 관계자와 함께 연단에 섰다. 트럼프는 물론이고 오바마, 부시 등 전임 대통령이 수시로 대국민 메시지를 내던 그 자리다. 펜스는 3, 4일에도 같은 자리에 섰다.

펜스가 트럼프를 대리해 백악관 기자실에 등장할 때마다 똑 부러지는 대책을 내놓는 건 아니다. 뉴욕 등 대도시 확산 조짐도 있어 트럼프 행정부의 코로나19 대책이 우리보다 더 낫다고 하기도 어렵다. 그래도 메시지는 꽤 선명하다. 사망한 확진자 가족에게 위로를 전할 때는 펜스 특유의 근엄하고 진지한 표정까지 더해진다. 4일 브리핑에선 우리보다 10초 짧은 20초 이상 물에 손 씻기 등 안전 수칙을 설명하더니 미국에서도 벌어지는 마스크 품귀 현상을 겨냥해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의료인을 제외하고) 미국인들은 마스크를 살 필요가 없다(There’s no need for Americans to buy masks)”고 했다.

미 코로나 TF의 브리핑을 접할 때마다 드는 의문이 있다. 왜 우리는 코로나 대책이나 메시지를 청와대 춘추관에서 발표하지 않을까.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선 대국민 메시지 내용 못지않게 누가 어디서 어떻게 발신하느냐도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 가장 자주 받는 비판은 메시지와 정책의 신뢰 문제일 것이다. 문 대통령이 코로나 사태 조기 종식을 언급한 후 확진자가 폭발한 건 차치하고, 마스크 수급 대책은 5부제를 시행하기도 전에 신뢰를 많이 잃었다.

대책 내용 자체에 문제가 많았던 만큼 청와대 기자실에서 발표했어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공무원 조직이 지금처럼 느슨하게 움직이고 국민이 이렇게 정부에 분노했을까 싶다.

청와대 춘추관 2층에 있는 브리핑 연단은 한국에서 가장 강력하고 무게 있는 공적 메시지 발신 장소다. 연단 뒤엔 ‘대한민국 청와대’라고 적혀 있다. 역대 대통령들이 좋거나 나쁜 뉴스를 여기서 발표했다. 문 대통령도 2018년 5월 27일, 전날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여기서 브리핑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선 아직 춘추관 연단에 서지 않았다. 국무회의 등 각종 회의와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마스크 대란에 사과하고 대책을 지시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마스크 5부제는 정부청사 브리핑룸에서 발표됐다.

대통령이 꼭 춘추관에 나서라는 건 아니다. 펜스처럼 행정부의 2인자인 정세균 총리가 설 수 있고, 필요하면 관계 부처 장관이나 기관장이 나설 수도 있다. 메시지에 무게를 실어 이전보단 공무원 조직을 더 움직이고 국민이 조금 더 정부를 믿을 수 있게 먼지만 쌓인 ‘1호 브리핑룸’을 활용하란 것이다.

다들 코로나 사태가 미증유의 위기라고들 한다. 그래서 여권 일각에선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나서면 총선에서 불리할 수 있다는 말도 들린다. 하지만 지금은 문 대통령과 공직사회가 진정성 있게 위기에 대처하는 것이 납세자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는 생각부터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코로나 브리핑#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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