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혈맹, 돈으로 살 수 있나[오늘과 내일/박용]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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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분담금-지소미아 韓-美 긴장감
동맹 미래, ‘희생과 신뢰’ 역사에 달려

박용 뉴욕 특파원
박용 뉴욕 특파원
20일(현지 시간) 밤 미국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비영리 한미 친선단체인 코리아소사이어티 연례 만찬장에 조현 주유엔 대사 등과 토머스 허버드, 캐슬린 스티븐스, 마크 내퍼 전 주한 미국대사와 월터 샤프 전 주한미군사령관,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 등 미국 내 ‘지한파’ 인사들이 대거 모였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결렬되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가 이틀 뒤로 다가온 민감한 시기였다. 행사장 내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개최 이후 열린 지난해 9월 연례 만찬장의 들뜬 분위기는 1년여 만에 온데간데없었다.

이날 기조연설자로 연단에 오른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61)은 “한국과 미국, 양국 관계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돼 매우 기쁘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이 자리에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와 있다”며 “이분들의 복무에 경의를 표한다”고 인사를 건넸다. 군복 차림의 노병들이 일어서 전 주한미군사령관에게 힘찬 거수경례를 하자, 장내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브룩스 사령관은 다시 “휴전 이후 다른 군인들이 또 다른 전쟁을 막았다”며 “휴전 이후 한반도에서 복무한 사람들은 일어나 달라”고 주문했다. 다시 한번 박수가 나왔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젊음을 바친 주한미군의 존재 자체가 한미동맹의 역사이자 산증인이었다. 브룩스 사령관이 “우리는 매우 중요한 순간에 있다. 한미동맹의 미래가 바뀔 수 있다”며 “한국과 미국의 국가주의 정책이 동맹의 현실을 놓치고 있다”고 말했을 때 장내는 숙연해졌다.

미군은 1950년 6·25전쟁이 터지자 유엔군을 이끌고 참전했다. 3만4000여 명이 한반도에서 전사했다. 이들 덕분에 전쟁의 위기를 극복한 한국은 안보와 경제를 일으키고 민주화를 위해 매진했다. 한국 젊은이들은 당시 시대 상황에서 미군과 함께 자유세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베트남 전선에서 싸웠다. 한국군 5000여 명이 산화했다. 미국의 핵심 동맹인 일본보다 한국에 ‘혈맹’이라는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리는 건 이유가 있다. 지금도 주한미군 병영에서는 영어와 한국어를 구사하고 대부분이 대학 재학 이상의 고학력자로 구성된 한국군 엘리트 사병인 ‘카투사(KATUSA)’들이 미군과 같은 막사를 쓰며 70년 가까이 함께 먹고 자면서 전선을 지키고 있다. 혈맹의 믿음과 신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8일 미국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을 맞아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공군기지를 방문한 자리에서 “취임한 후 2조5000억(달러)을 썼다. 우리는 군대를 재건하고 있다”며 자랑했다. 부동산 사업으로 잔뼈가 굵은 그의 사업적 계산법에 돈으로 표시되지 않는 ‘혈맹의 가치’는 큰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한미동맹과 세계 분쟁의 역사는 수십 년간 희생과 신뢰를 통해 형성된 혈맹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스티븐스 전 대사는 이날 한국 특파원들과 만나 “내년은 미군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지 70주년이 된다. 한미동맹을 재조명해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현재 미국에서 한미관계에 대한 많은 의문이 나오고 있다”며 “‘미국 우선주의’가 고개를 들면서 동맹이 이익보다 부담이 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오래된 관계와 역할을 되짚어 보면서 관계 발전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미동맹의 미래로 가는 길의 열쇠가 지나온 혈맹의 역사에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
#한미 혈맹#방위비 분담금#지소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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