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이 부머, 오케이 밀레니얼[오늘과 내일/박용]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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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부추기는 편견과 차별, 세대 간 소통과 화합의 장벽

박용 뉴욕 특파원
박용 뉴욕 특파원
영어 오케이(OK)는 ‘좋다’ ‘알았다’는 뜻이지만 톤을 살짝 비틀면 “알아들었으니 그만하라”는 무관심의 메시지로 바뀐다. 요즘 미국에서 소득 불평등, 기후변화 등 미래 세대를 위협하는 문제를 기성세대들이 방관하고 있다는 불만을 가진 젊은이들이 “오케이 부머(됐어요, 베이비부머)”를 외친다. 이달 초 뉴질랜드 의회에서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법안을 연설하던 20대 여성 녹색당 의원이 나이 든 동료 의원들의 야유에 “오케이 부머”라고 응수한 게 유행어가 됐다. “요즘 젊은이들은 나약하고 세상에 대한 불평만 늘어놓는다”고 타박하는 어른들에게 “오케이 부머”라고 대꾸하는 식이다.

놀림감으로 전락한 기성세대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미국은퇴자협회로 잘 알려진 AARP의 미어나 블리스 수석부회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오케이 밀레니얼, 하지만 실제로 돈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라고 맞받아쳤다. 이 ‘오케이 밀레니얼’ 발언은 불평등 문제에 민감한 젊은이들의 역린을 다시 건드렸다. 젊은이들은 “당신들이 왜 돈을 실제로 갖고 있는지 이야기해 보자”며 소셜미디어에서 분노를 터뜨렸다. 뉴욕타임스(NYT)는 “‘오케이 부머’는 친밀한 세대 관계가 끝이 났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오케이 부머’ 현상을 주목했다.

미국의 신구 세대 간 갈등이 주목을 받고 있지만 새삼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갈등이다. 어른들은 “요즘 아이들은 형편없다”는 ‘요즘 아이들(Kids these days) 편견’을 갖고 있으며, 젊은이들은 그런 어른들의 오만과 독선에 반기를 드는 일이 인류 역사에서 무수히 반복됐다.

미국 인터넷매체 복스(Vox)는 존 프로츠코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대 교수 연구팀이 아동 심리와 행동의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2017년 실시한 흥미로운 실험을 소개했다. 인지 심리학자 260명에게 아이들의 인내심에 대한 지난 60년간의 평가 결과를 물었더니 응답자의 84%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수가 나빠졌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현실은 거꾸로였다. 요즘 아이들이 그들이 어렸을 때인 수십 년 전보다 참을성이 있다는 게 실제 평가 결과다. 전문가들조차 세대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한 셈이다.

근거 없는 세대에 대한 편견은 왜 생기는 걸까. 연구자들은 인간의 기억이 과거를 그대로 보여주는 비디오가 아니라 기억을 선별해서 보여주는 비디오 편집기와 같다고 말한다. 과거를 떠올릴 때 현재의 처지, 생각을 욱여넣는 ‘현재주의(presentism)’ 편향에 휘둘린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관계가 나빠지면 그 사람에 대해 불편한 기억을 더 많이 떠올리는 식이다. ‘나 때는 이랬는데…’라고 과거를 회상하는 ‘나 때’들도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상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른들만 세대에 대한 편견을 가진 건 아니다. 나이 든 사람에 대한 무시, 다른 인종에 대한 반감 등이 근거 없는 편견에서 출발해 사회를 산산조각 낸다. 미국에서 직장 생활 중 “오케이 부머”라는 말을 쓰면 나이 든 사람을 차별하지 못하게 규정한 연방 법률에 저촉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오는 이유다. 끔찍한 점은 이런 세대 간의 편견이 조작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책을 많이 읽은 어른들은 요즘 아이들이 예전보다 독서에 관심이 덜하다고 답한다. 하지만 자신의 독서 능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주입받은 어른들은 아이들의 독서 실력에 대해 더 관대해진다는 연구 결과를 복스는 소개했다.

수천 년 이어진 세대 갈등은 서로 다르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기준으로 네 편 내 편 나누는 편견과 차별의 또 다른 이름이다. 서로 삿대질을 하기 전에 색안경을 벗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톤만 살짝 바꿔도 “오케이 부머”, “오케이 밀레니얼”은 얼마든지 긍정의 메시지로 바뀔 수 있다.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
#베이비부머#밀레니얼 세대#현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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